내 살림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어머님 전화가 받기 싫어졌다. 달가운 전화였던 적이 없었다. 늘 무언가 해야 하거나 뭘 요구하시는 전화였으니 벨 소리 울리는 게 무서웠다. 좋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꿈꿨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꿈이었다.
"수현아! 집에 있제? 엄마 조금 있으면 도착한다. 알았제!"
어머님은 늘 일방적인 서프라이즈 방문이 전문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님만의 사랑 방식이었다. 이건 사랑일까? 이기일까? 그래도 그것이 사랑이고 관심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상한 건 사랑이라면 반가움이 느껴져야 했을 텐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님은 늘 말씀하셨다. 가족끼리 무슨 격식을 차리고 불편하게 그러냐고.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친구와의 약속도 미리 하지 않으면 불편한 성격이었다. 하물며 시어머니와의 만남이고 거기다 집으로 오시는 건데 불시방문은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오신다는 걸 미리 알아야 대접할 준비도 하고 청소도 해놓고 할 텐데, 결혼 생활에 나의 사정 따위는 없었다.
딩동! 벨 소리가 울렸다. 어머님이 도착하셨다는 신호였다. 그런데 화면에 얼굴이 보이지 않으셨다. 나가서 문을 열었더니 짐 다발을 한가득 들고 계셨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신문지 일면과 정체 모를 색색깔의 잎사귀들.
"너거 집 멀~겋게 해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해놨길래 엄마가 시장 가서 좀 사 왔다."
꾸러미를 펼쳐보니 조화가 한가득이었다. 화분에 담긴 커다란 조화, 벽에 걸어두는 조화, 탁자에 두는 조화. 한눈에 봐도 나 가짜요. 라고, 말하는 조화가 가득했다. 이미 죽어있으니 죽을 일이 절대 없음을 보여주는 뻣뻣한 가지와 잎사귀. 그것들이 왜 내 집에 와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와 남편이 어떤 반응을 할 겨를도 없이 신혼집 데코레이션 작업에 들어가셨다. 미리 생각해 두신 건지 원래 정해진 자리가 있었던 것처럼 꽃들은 순식간에 놓였다. 생기 없이 어색하게 뻗어있는 조화들 덕분에 나도 내 집이 어색해졌다. 수동적인 건 조화나 우리나 매한가지였다. 신혼집 인테리어는 그렇게 당신의 마음대로 이루어졌다.
사러 갈까 하시는 중도 아니고, 사러 가는 도중도 아니고, 사러 가서 고르는 중도 아닌. 말도 없이 구매 완료 후 이미 배달에 세팅까지 완료된 상태에서 이걸 다시 돌려보낼 수 있는 강단 있는 며느리가 세상에 있으려나?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뭐라도 챙겨주시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남편과 나는 조화들과 한참을 동거했다. 그것도 사랑이라 여기며. 조화가 끝일 줄 알았던 어머님의 일방적인 사랑은 그 뒤로도 수없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은 어머님의 어머니께서 혼수로 물려주신 거라며 한쪽 손잡이가 떨어진 압력밥솥을 가지고 오셨다. 이제는 밥해 먹을 때 꼭 이걸로 지어먹으라고 하시며. 거기다 덤으로 그릇도 주셨다. 눈이 어지러워 밥 먹기가 힘들 것 같은 80년대 디자인의 이름 모를 그릇들이었다. 또 어느 날은 혼자 사니까 먹을 일이 없다며 안 먹는 음식들을 갖다주셨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가 수두룩했다. 그때부터 나의 순진하고 멍청한 짓은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주실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긴 했는데 뭐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그제야 든 것이다. 감사한 마음이 점점 불쾌한 마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란 사람을 어떻게 취급하시는 거지?’
나의 의문이 시작되던 즈음 어머니의 일방적 사랑은 더 잦아지고 더 많아졌다. 언제나 한결같이 온다는 얘기 없이 오는 길에 가고 있다고 통보하셨다. 친구가 집에 있든, 친정아버지가 와계시든 상관없었다. 미리 연락 좀 주시면 좋겠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늘 같은 말만 하셨다. 가족끼리 불편하게 뭘 그러냐고.
그 어떤 개인사도 어머님 방문 불가의 사유가 되지 못했다. 상대방의 입장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어머님과 어떻게 해야 잘 지낼 수 있는 건지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잘하려고 애쓰면 잘 지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어머님에게 맞추면 맞출수록 끝이 없었다. 그런데도, 10년의 세월을 그렇게 바보처럼 지냈다. 참는 게 능사인 줄 알아서. 이제는 안 하실 거라고 생각 하면서.
항상 '자기 뜻'이 중요한 어머님과 그 '남의 뜻'이 불편하고 힘들었던 우리.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열 번이 되면서 깨달았다.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내 뜻 강요 시추에이션은 우리가 바뀌지 않으면 평생 벌어질 거라는 걸. 시부모님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을 무조건 다 따르는 것으로 행동하면 관계는 산으로 간다. 솔직한 마음을 전달한다고 해서 속상해하시거나 나를 미워할 것이라고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어쩌면 나의 울타리는 내가 알아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만큼만 열어두어야 한다. 풀 오픈 상태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결국 나는 침해당하고 나를 지킬 수 없게 된다. 좋은 마음이라는 무른 마음이 고부 관계를 더 악화시켰을지 모른다.
말 잘 듣는 며느리가 좋은 며느리고 사랑받는 며느리라고 착각한 십 년 전의 나에게 경고한다. “내 생각, 내 의견을 솔직히 말할 것”. 결혼은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