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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Dec 20. 2020

사계절을 하루에 느낄수 있는 도시,멜버른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야라강의 위로

10시간이 꼬박넘는 비행끝에

드디어 멜버른에 도착했다.


쿠알라룸프루를 경유해 밤 비행내내 잠을 자는둥 마는둥 해서 아침에 겨우 도착한 터라 정신은 비몽사몽이었다.

마중 나와준 친구가 아니었다면 내 몸만한 캐리어와 어깨를 짓누르던 가방을 들고 시티까지 가지 못했을 거다. 시티로 가는 버스를 타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데 따뜻한 햇빛이 창문으로 가득 들어왔다.

마치, 멜버른에 잘 왔어- 라는 환영인사처럼.



시티 중심부에서 살짝 떨어진 백팩커 호스텔의 내 방은 투숙객이 없어 휑했다. 거의 독방처럼 쓸수 있어서 좋았지만, 어딘가 외로운 느낌이 드는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외로움에 잠겨있을 시간이 없었다. 현재 나는 집도 없고, 일자리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집을 구해야 했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짐을 풀고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인터넷으로 멜번 내 쉐어하우스를 검색하고 몇군데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한 세군데를 둘러본 결과 마지막으로 본 집이 가장 맘에 들었다. 도클랜드라는 동네였는데 시티와도 가까운데다 무료 트램존이고 무엇보다 멜번스타가 보이는 야경이 너무나 예뻤다. 일주일 뒤면 살고있는 쉐어생이 나가기 때문에 그때 입주 가능하다고 해서 계약금을 바로 걸었다. 하루만에 집을 구하다니, 집을 구한 것 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었고, 덕분에 긴장이 풀렸는지 그날 밤은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쓰러지듯 잠들었다.




 다음날은 계좌를 개설하고, 핸드폰 유심을 사기 위해 밖을 나섰다. 아직 지리가 서툴러서 트램을 타는게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나 무료 트램존이 아닌곳에서는 차비가 나가기 때문에 지리도 익힐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30분을 꼬박 걸어서 도착한 멜번 CBD는 굉장히 번화한 곳이었다. 유럽식 건물같은 H&M건물이 너무 멋있었고, 멜번센트럴의 쇼핑센터는 사람들로 붐볐다. 먼저 은행에 들러 계좌를 개설하려 하는데 여기는 1:1로 은행 직원과 계좌 상담을 해서 개설을 할수 있는 형식이었다. 오랜만에 영어로 대화하려니 긴장되기도 했고, 워낙 센 호주억양에 정말 띄엄띄엄 알아들으며 겨우 계좌를 개설했다. 앞으론 정말 영어공부 정말 열심히 해야지.     


점심시간이 되어 배가 고파진 나는 브런치를 먹을 생각에 예쁜 카페를 검색해보았지만, 지금 나는 구직자이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아껴야했다.  살벌한 물가의 멜번, 10불이하의 식사를 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지나가다 보인 카페에 들러 8불짜리 아보카도 치킨샌드위치를 주문했고, 퍽퍽했지만 꽤 든든하게 속을 채울수 있었다.    

    


멜버른은 하루에 사계절을 다 느낄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덕스런 날씨가 유명한 도시다. 추운 날씨를 예상하지 못한 탓에 얇은 옷만 입고 돌아다녔더니 첫날부터 제대로 감기에 걸려버렸다. 덜덜 떨며 옷을 잔뜩 껴입고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데 추워서 잠이 제대로 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의 그 모진 눈빛과 평가들이 더더욱 내마음을 춥고 외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나를 향한 그 잣대들이 없기에 나는 이곳을 선택했고, 그 선택의 댓가를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내 스스로의 결정에 절대 후회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다음날, 아픈 나를 걱정한 친구가 한식집에 데려가주었다. 든든한 밥을 먹으니 그나마라도 좀 살거 같았다. 그날도 한식집에는 일자리를 구하러 온 한국 워홀러들이 줄을 이뤘다. 다들 20대로 보이는 대학생들이었는데, 30대인 나에게 일자리가 과연 주어질까, 마음은 조급해지기만 했다. 검트리라는 구인공고사이트에 이력서도 넣어보고 직접 이력서를 들고 여러군데 레스토랑과 카페를 돌아다녔지만, 연락이 온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친구는 걱정스런 나를 보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보여주고 싶은데가 있다며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한참을 걸으며 멜버른의 모습을 하나씩 눈에 담기 시작했다. 수트를 입고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하는 직장인, 색색깔의 예쁜 꽃들이 활짝 핀 꽃집, 버스킹하는 사람들. 너무나 자유로와 보이는 멜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멜버른의 마스코트, 플린더스 역을 지나 한참을 걷자 야라강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강가 잔디밭에 누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어 보이는 그들이 왠지 부러웠다.

  

친구는 우울해지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 야라강을 보러 온다고 했다. 뭔가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걱정들을 조금은 내려놓게 된다며.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절대 잊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곳에 온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나는 그 이후로도 혼자서 가끔 야라강을 찾아갔던 거 같다. 말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 받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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