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택: 고양이가 인간 집사를 선택하는 상황을 뜻한다.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하지 않고 졸졸 따라오다 집으로 오는 경우도 있고, 날 어서 데려가라면서 애타게 바지춤을 잡고 늘어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를 간택한 날의 루비. 무단 침입 직후이다.
감자/맛동산: 냥이들의 똥이 전용 모래와 함께 굳어져 감자나 과자처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소변이 굳으면 감자처럼 보이고 대변이 굳으면 과자처럼 보인다.
궁디팡팡: 집사가 냥이의 엉덩이 위쪽을 손바닥으로 팡팡 쳐 주는 것을 말한다. 굉장히 좋아한다. 궁디팡팡을 해 주면 특유의 목과 어깨가 움츠러들면서 엉덩이는 높이 치켜세우는 자세가 나오는데 아주 귀엽다. 집사와 냥이 둘 다 중독되는 행동이다.
똥스키: 변을 본 고양이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스키를 타듯이 다리로 몸을 앞으로 미는 행동이다. 보기엔 귀엽지만 집사에겐 끔찍한 일이다. 스키 궤적을 따라 바닥에 선명하게 찍힌 똥 자국을 볼 수 있다. 배변이 어려운 고양이들이 자주 보이는 행동이다.
똥스키 국가대표 뚱냥이 구로. 지금은 똥스키를 타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냥줍: 길냥이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게 되는 것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간택도 냥줍에 포함되지만, 간택과 달리 냥줍은 사람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새끼 고양이를 냥줍 할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어미 고양이 없이 혼자 떨어진 새끼 고양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데려와야 한다. 단순히 어미 고양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끼가 없어진 걸 알면 마음이 찢어질 것이다.
사막화:온 집안에 화장실용 모래가 잔뜩 떨어진 것을 말한다. 용변을 본 후 몸에 묻어 있던 화장실 모래를 완전히 털지 않은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이 그 이유이다. 아무리 잘 터는 냥이라도 화장실 앞은 난리가 난다. 청소를 자주 하거나 매트를 두는 것이 좋다.
임보: 임시 보호의 줄임말이다. 최초 냥줍자(?)가 정식 입양자 혹은 또 다른 임보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임시로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 마끼와 구로는 임보 중 나의 고집으로 함께하게 된 경우이다. 끝내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아 발견자가 그냥 키우는 경우도 있다.
캣브로의 임보를 거쳤던 귀여운 냥이들. 다들 착하고 예뻐서 좋은 집사들에게 금방 입양되었다. "잘 살고 있니?"
입양: 고양이를 데려오거나 보내는 것을 말한다. 고양이 커뮤니티를 통해 개인적으로 입양을 하거나 보내는 경우도 있고, 업체나 전문 기관을 통하는 경우도 있다.
집사/캔따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다.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대부분 알고 있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워낙 고양이가 까탈스러워 상전처럼 모셔야 된다는 느낌이다. 독일 집사들이 쓰던 말에서 나온 캔따개도 비슷하다. "너는 내 간식 캔을 따주는 사람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냥!"이라는 느낌으로 이해하면 된다. 외국도 고양이들이 아주 건방진 녀석들인 건 다르지 않은가 보다. 집사라는 호칭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고 외국에서는 노예, 하인 등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탁묘: 집사가 장기간 집을 비울 때, 다른 집사나 고양이 호텔에 잠시 냥이를 맡기는 것을 말한다.
털뿜: ‘털을 뿜는다’의 줄임말이다. 뿜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정말 많이 빠진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빠진다.
거짓말 안 하고 털 청소기로 침대를 한 번 밀었을 뿐이다.
헤어볼: 몸을 그루밍하면서 삼키게 된 털들이 뭉친 것이다. 삼킨 털은 대부분 변과 함께 나오고 남은 털은 구토를 통해 헤어볼 형태로 나오게 된다. 멀리서 보면 똥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보 집사 때는 고양이가 헤어볼을 토하는 모습을 보고 큰일이 생긴 줄 알았다. 오히려 쌓인 털을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 큰일이다. 소화되지 않은 사료와 함께 나온 헤어볼을 치우는 일이 곧 일상이 될 것이다.
친절한 캣브로
불친절한 사람으로 남을 걸 그랬다. 이 정도 집사 경력이면 고양이 용어들을 쉽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너무 얕봤다. 떠오르는 용어들을 두서없이 나열하고 보니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해야 할지 혼란이 엄습했다. 어렵사리 기준을 세우고 빠진 용어들을 추가로 채우고 나니 개수도 적은 편이 아니었다. 어떤 용어를 먼저 설명할지 그리고 얼마나 자세히 써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일단 써라! 집사야!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냥!"
고양이 용어 편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집사로서 고양이 용어를 소개할 수 있어 행복하다. 모종의 자부심 같은 것도 느낀 한편, 확신이 없어 완성도 되지 않았는데 유난히 아내의 검수를 자주 요청했다. 가끔 글이 풀리지 않을 때는 강아지 관련 용어를 찾아보며 딴청을 피웠다. 비슷한 용어보다는 생소한 말들이 많았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내 글도 낯설지 않았을까. 이미 집사인 이들은 심심풀이로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초보 집사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불친절한 캣브로’로 고양이 용어 편의 운을 뗐지만, 지금은 ‘친절한 캣브로’로 감히 마침표를 찍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