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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May 14. 2021

4냥이가 펼치는 암투의 현장

고양이 서열과 싸움

4냥꾼 캣브로, 열여덟 번째 이야기




고양이에게 서열은 곧 질서다


수능 성적부터 연봉까지, 우리는 모든 것에 서열이 매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힘세고 깡 좋으면 ‘짱’이던 어린 시절을 지나, 소위 잘 놀고 잘생겨야 ‘인싸’가 될 수 있던 그리운 시절도 엊그제. 어느새 잘 벌고 잘 나가야 사회에서 인정받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슬프지만, 뭐 별수 있나.


고양이 사회에도 서열이 있다. 그리고 서열은 덩치나 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간 사회에서 무력만으로 권력을 쟁탈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일종의 기세와 카리스마, 권모술수와 정치력도 중요하다. 영역을 중시하고 독립적 성향이 강한 고양이 사회에도 서열이 존재하는 것이 의외일지 모른다. 수직적 관계보다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시대에 서열이라니, 왠지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좋게 보자. 이쪽은 서열이 잡힐수록 싸움도 덜한 세계니까.


고양이가 얼마나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로 서열을 가늠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낮은 캣브로의 코를 츠동이가 발로 누르고 있다.


문제는 서열이 비슷한 경쟁 관계에서 나타난다. 넓은 영역을 공유하는 길냥이 무리 안에서도 서열 싸움이 일어나는데 좋든 싫든 매일 봐야 하는 다묘 가정의 냥이들이라면 오죽할까. 매일 으르렁대는, 아니, 하악대는 냥이들을 보며 스트레스받는 집사들도 많을 것이다. 과장을 좀 보태어, 이곳은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눈치 싸움의 현장이다. 어설픈 정치력과 힘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츄르보다 맛있는 권력의 맛


첫째인 츠동이부터 넷째 루비까지 공교롭게 서열도 태어난 순이다. 서열 정리가 확실하게 된 탓일까. 다행히 우리 4냥이들은 TV 동물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처럼 피 튀는 싸움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 안에는 나름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질서가 존재한다. 4냥이들이 펼치는 암투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No. 1 츠동이. 명실공히 우리 집 서열 No. 1이다. 4냥이 중 맏이이자, 우리 집의 왕. 먼저 시비를 거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자신에 대한 일체의 도전은 허용하지 않는다.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는 무인(武人) 타입이다. 그것이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츠동이가 엄청난 분노로, 문자 그대로 사람처럼 씩씩대는 것을 딱 두 번 본 적이 있다. 제대로 붙으면 내가 질 것만 같았다. 그때의 츠동이는 호랑이와 싸워도 이길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 한번 화가 나면 우리도 말릴 수 없다. 다만 새끼 냥이들은 은근히 잘 챙기는 츤데레(쌀쌀맞아 보이나 의외로 다정한) 같은 면도 있다. 이제 2살인 조카가 와서 거칠게 만져도 물거나 할퀴지 않는다. 약자에게 한없이 약한 신사라고 할 수 있다.


동생들에게는 무는 장난을 많이 친다. 하지만 동생들이 먼저 무는 것은 봐주지 않는다. 왕처럼 자라서 그런가 물 때도 ‘왕’ 하고 문다. 워낙 힘이 세기에 물린 냥이는 낑낑대기도 한다. 한마디로 ‘내로남불’의 정석을 보여 준다. 집사한테도 예외는 없다. 평소에는 관심도 주지 않더니 본인이 외롭다 싶으면 눈치도 보지 않고 몸으로 훌쩍 뛰어오른다. 아무래도 잘못 키운 것 같다. 버르장머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귀엽기도 하지만 우리 집 실세인 아내의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괴식 고양이」 편에 등장했던 그 친구이다. 친구 집 고양이를 자기 팔에 타투로 새기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다. 츠동이는 예쁘게 잘 나왔다.


애교 많은 동생이자 다정한 누나인 마끼가 No. 2이다. 냥이한테도 친절하고 사람에게는 더 친절한 천사냥이다. 힘이 약해서 다른 냥이들에게 심한 장난을 많이 당하나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권모술수에 능해서 서열 2위를 지키고 있다. 돌이켜 보니 마끼와 다른 냥이들이 싸우면 거의 마끼 편을 들어주었다. 싸운 후에도 항상 측은해 보이는 눈을 하고 나에게 달려와 칭얼댄다. 어찌 보면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권력이라면, 다른 세 녀석이 먹는 간식을 합친 양보다 혼자 먹는 간식의 양이 많다는 점에서도 마끼를 서열 2위로 볼 수 있다. 워낙 식탐이 많아 보채는 탓도 있지만, 마음을 녹이는 애교와 자연스럽게 나오는 짠한 표정에 홀려 나도 모르게 간식 캔을 따고 만다. 전략으로 승부하는 지략가와 같은 면모가 있다.


"구로 인마! 내가 너 업어 키웠어!" 구로가 어렸을 때 유독 잘 챙겨준 덕분인지, 성묘가 된 지금도 구로는 마끼를 따르고 챙긴다.


힘 좋고 체격 좋은 구로는 No. 3이다. 힘으로만 치면 츠동이와도 맞먹을지 모나 기세에서 눌린다. 겁이 많은 구로는 특히 사람을 무서워해서 주로 쉬는 영역도 제한적이다. 보통 침대 밑이나 침대 구석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구로도 버릇없는 고양이만큼은 봐주지 않는다. 까불이 루비는 얼마 전까지 구로에게 많이 맞았으나 다행스럽게도 요즘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


의외로 우리 집의 고양이 군기 반장은 츠동이가 아닌 구로이다. 군대로 치면 말년 상병과도 같다. 츠동이에게는 아주 깍듯하고 마끼에게도 여간해서는 심한 장난을 치지 않는다. 하지만 동생들이 츠동이나 마끼에게 함부로 하는 것을 발견하면 자비 없이 냥냥펀치를 날린다. 임시 보호를 위해 왔던 많은 새끼 고양이들이 츠동이에게 까불다 구로에게 혼났다. 정작 츠동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좋게 말해 힘과 질서를 숭상하는 타입이고, 사실은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만 강한 귀여운 녀석이다.


"나 넘버 쓰리야~ 이쒸~!" "구로야, 너 많이 컸다." "츠동이 형아, 미안해. 안 까불게..."


힘으로도 누나인 마끼한테 안 되는 우리 집 막둥이 루비. 까불이 루비는 No. 4이다. 특유의 활발한 에너지로 냥이든 사람이든 귀찮게 하는 데는 도가 텄다. 예상외로 츠동이가 루비를 싫어하지 않아서, 루비가 온 뒤 츠동이의 운동량이 많아진 것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구로한테는 꼼짝을 못 한다. 어디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가 보면 구로한테 냥펀치를 맞으며 기합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루비도 참 성깔이 있는 게, 물러서지 않고 계속 덤빈다. 그러나 싸움이 될 턱이 있나. 구로를 누를 수 있는 건 츠동이뿐이다. 결국은 울상이 되어 나나 아내에게 와서 안아 달라고 노래를 부른다. 시간이 흘러 루비에게도 동생이 생기면 얼마나 잘 지내게 될지 기대가 된다.


"억울하다! 억울해! 형아랑 놀자고 한 건데 왜 때리냥!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키도 크고 멋진 캣브로는 아쉽게도 No. 5이다. 우리 집에서 서열이 제일 낮다. 냥이들만큼 귀엽지는 않지만, 청소와 요리를 잘하는 가정적인 성격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현재 더 귀여워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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