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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Feb 18. 2024

모욕과 굴욕의 경계

벌을 서다 나간 아이


사건 파일


S군 (고2) :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함께 공부 시작. 답지 보고 베끼면서 과제 해결을 하며 간혹 거짓말도 함.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업에 불참. 거짓말이 탄로가 나고 무릎 꿇고 의자 들고 벌을 세웠더니  벌을 서던 와중에 교실을 나가 버림.


H 양 (중2) : 찔끔찔끔 과제를 덜 해오는 일이 빈범함. 집이 가까워 틈새 검사를 자주 시행함. 어느 날은 검사 맡으러 왔길래 잔소리를 좀 했더니 고등학생 오빠들 앞에서 야단쳤다고 그다음 날부터 수업 안 옴


M군 (중3) : 1년 반의 시간 동안 계속된 지각, 과제 찔끔찔끔 덜 해오기. 과제 퀄리티는 90% 오답. 앞에서 풀리면 거의 다 맞춤. 복습은 전혀 하지 않아 개념은 내 머릿속의 지우개로 LTE급으로 잊어먹음. 하지만 수업은 꼬박꼬박 열심히 참석. 지각 하나만은 잡자는 생각에 지각 시 무릎 꿇고 의자 드는 벌 시행. 아이가 너무 싫다고 얘기한 듯, 어머니에게 하지 말아 달라는 문자 받음.




수치심 : 본인의 잘못이나 결함에 대한 타인의 지적을 받으면서 느끼는 부끄러운 감정,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서 유발되는 감정
모욕 :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서 화가 나는 감정 (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서 느끼는 감정)
굴욕 : 모욕에는 언제나 가해자가 있지만 굴욕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이 서로 예의 바르게 굴더라도 어떤 사람은 굴욕을 느낄 수 있다.
-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우리 행위의 작은 상호작용에서 거짓이 끼어들면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S는 내게 아파서 못 온다는 거짓말을 했다. 필시  그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린 것일 게다. 그리고 다음 날 과제도 덜 해왔다.

"무릎 꿇고 의자 들고 벌 서! "

주섬 주섬 일어나더니 무릎을 꿇는다. 20~30분 정도 벌을 세우려 했고 가끔 한 번씩 힘에 부쳐 팔이 내려올 때마다 주의를 줬다. 그러다 책상을 슬쩍 밀었다. "똑바로 안 해!" 책상은 밀려 아이 몸에 살짝 닿았다. 그러자  S는 갑자기 의자를 내리고 일어나더니 자신의 가방을 천천히 매고는 겸연쩍은 미소를 살짝 흘리는 건가 아닌가 잘못 봤나라고 생각한 찰나 교실을 나가버리는 것이다. 너무나  순식간이라 뭐라고 말을 할 새도 없이 그 일이 일어났다.



내가 책상을 밀면서  S는 자신의 중요 부위에 책상다리가 살짝 닿았던 것이다. 나중에 S의 어머니에게 전해 들어서 알게 되었다. 나라고 뭘 겨냥하고 책상을 밀었겠는가. 다리가 몹시 길어서 다리를 모으지 못한 S의 신체적 이유가 더 큰 것 같은데 말이다. 굴욕감은 곧 모욕감으로 바뀌었고 나는 자신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가해자가 되었다. 하지만 S의 어머니는 아들의 호소에 설득과 대화를 해 주셨고 얼마 후, S는 길고 긴 사과의 문자를 보내왔다. 결과만 놓고 선생님 탓을 하며 모욕당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작은 굴욕으로 치부하며 굴욕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운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H양은 그날따라 고등학생 남자애들이 쭈욱 앉아있는 분위기에서 야단을 맞았다.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한 잔소리였지만 오빠들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수치심이 생겨 더 이상 학원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M군은 지각하지 않겠다는 생각 대신 그 벌이 싫고, M군의 어머니는 그 벌은 아이에게 맞지 않으며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표시만을 전달해 왔다. 선생님이 그런 벌을 내린 것이 싫고 자신은 수치심과 모욕을 느꼈으며, 나는 어느새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모욕을 당한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모욕감을 강조하면서 어머니에게 항의하고 효과적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하지만 이것은 상호작용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벌을 준다는 시스템의 문제이며 자기 잘못에 굴욕감을 느꼈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와 어머니와의 상호작용은 모욕을 당한 일이 되어버렸고 나에게 항의하며 자신에 대한 방어만을 하는 것이다. 조그마한 대처가 모욕과 굴욕을 결정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아이들의 행동 수정을 하겠다는 단순한 이유만이었을까?  아이들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의도로 벌을 세운 건 아닐까? 모욕과 수치는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 또한 내가 느끼는 모욕과 굴욕감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규칙을 어겼을 때 벌을 세운다는 시스템은 좋은 의도로 제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었으나 아이들이 느끼는 것은 모욕, 수치심, 굴욕일 수도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만두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의 원칙은 성장해 가고 있는 청소년 앞에서는 늘 고치고 다듬고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ing다.


S는 그 후 답지를 베끼는 자행을 또 저질렀고, 친구가 고자질을 해서 또 보기 좋게 들켰다. 고2나 되었는데 자중하자는 진중한 나의 충고, 이번에는 마주 보며 조용히 대화로 이끌어서 그런지, S는  달라진 총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고3 수능까지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끝가지 공부해서 6등급을 4등급까지 올리는 쾌거를 이룩해 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메시지를 꼬박꼬박 보내주고, 방학이 되면 반지르르한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우리 집 현관을 방문한다. 유쾌한 S는 수업 때마다  어록을 많이 남겼다.


※ 수학은 수학선생님이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라

※ 뭔 느낌인지 알았으면 맞춰야죠!(애석하게도 느낌 왔는데 틀리는 애들이 부지기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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