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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Feb 28. 2024

안녕 : 굵은 똥이여, 나오게 해 주소서

뜨겁게 뜨겁게 안녕


도로 곳곳이 울퉁불퉁하게 패인 4차선 국도를 따라 운전을 하다 보면 운전대를 잡은 손은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타운에서 15분 정도  차를 몰고 들어가면 덤프트럭과 승용차들이 엄청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도로가에 작은 중학교가 있다. 총 6 학급의 남녀공학, 1998년 교사로 임용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남녀 공학이지만 학년마다 남학생 1반, 여학생 1반으로 성별에 따라 반을 나뉘었다. 2학년 남학생들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업 시간에도 남다른 친목을 나누며, 하고 싶은 말들을 여러 명의 입에서 한꺼번에 쏟아내느라 활발함을 넘어 소란을 만들어냈고, 자연스럽게 선생님들 사이에는  기피하고 싶은 반으로 통했다. 2학년 남학생들 반이 기피하고 싶은 반이 된 또 다른 이유는 추석을 3주 정도 남겨둔 어느 날이었다.


타운에서 등하교를 하는 영일이가 배가 아프고 수업 시간에도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부터였다. 단순한 설사와 배아픔이 아니었다. 여름 방학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운에서 전염병이 감지되었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병의 확산은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영일이가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영일이는 학교가 위치한 면에 살지 않고 타운에 산다.



세균성 이질 :

시겔라(Shigella) 균이 일으키는 질환으로 2급 감염병이다. 환자 또는 보균자가 배출한 대변을 통해 나온 시겔라균을 입으로 삼켰을 때 감염되며, 매우 적은 양(10∼100개)의 세균도 감염을 일으킨다. 이질의 원인균인 시겔라를 먹었을 때 12시간 정도면 증상이 나타난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발열과 복부 통증이고 다음으로 물설사가 나타나며, 이후 열이 떨어지면서 설사의 양은 줄지만 1일 ~ 2일 후 피가 섞인 점액질 대변을 보게 된다. 치료하지 않으면 증상은 1일에서 1개월 동안 지속될 수 있고 평균 7일 정도 지속된다.



보건소에서 간호사가 와서 영일이를 검사했다. 검사결과는 조금 기다려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일이는  당시 꽤 비싼 가격을 가진 이질 약을 받았고 바로 집으로 귀가 조치 되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보건소에서는 다음 날부터 학교로 손소독제를 보내왔다. 코로나를 맞이하면서 본 무색의 간편 소독제가 아니라 진한 갈색의 요오드 용액이었다. 넓적한 투명 플라스틱에 반쯤 담겨있는 요오드 용액, 무척이나 손을 담그기 싫게 생겼지만, 손이 완전히 젖도록 쫘악 펼쳐 몇 초간 담그고 있어야 한다. 그대로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손을 펼쳐 공기 중에 1분간 두었다가 흐르는 물에 씻는다. 수업을 마치는 매 시간마다 손을 소독했고, 학생들과 모든 선생님은 화장실 앞에서 각자의 갈색 손을 펼쳐가며 공기 중에 건조를 시키는 풍경이 벌어졌다. 혹시라도 내 손에 있을 이질균이 보기 흉한 갈색 용액과 함께 날아가주길 소망하고 바라는 의식이었다.

 

2학년 남학생 반 수업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는 더 열심히 소독했다. 활발하고 게다가 다정다감하기까지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영일이를 반전체 아이들이 다정히 포옹하고 어루만졌고 그것도 모자라 영일이 책상에 온몸을 던져 비비적거렸다는 후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친구와 같은 길을 걷고 싶었음이 틀림없다. 나는 우선 교탁을 교실 출입문 앞으로 끌고 와 교탁을 한 번도 떠나지 않으면서 자리를 고수했고 칠판 풀이도 시키지 않았으며 "과제 검사 안 받아도 돼,  아니 아니 앞으로 나오지 마!  질문??? 나중에 해 나중에!!"라고 절규했다.


여학생 반은 서로 이질에 걸리지 않는 민간조치를 공유했다.

"선생님 이질균은 매운 음식을 먹으면 걸리지 않는데요.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요"

"그래서 집에 가서 매일 비빔밥 먹고 있어요. 고추장 팍팍 얹어가지고요".

"선생님도 드세요! 아주 맵게"

그렇구나 얘들아. 따끈한 정보에 감사하며 퇴근 후 비벼먹은 숱한 비빔밥과 매운 음식과의 향연은 파티 수준이었다.


3학년 남학생들은 그래도 좀 점잖았다. 별 동요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2학년 동생 민규를 둔 성규가 양호실에 불려 가면서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눈이 단추구멍이라는 것만 유일하게 닮은 듯한 두 형제는 장난꾸러기 민규가 설사 증상이 나타나면서 형이자 한 집안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성규도 검사대상이 되었다. 성규는 양호실에 갔다 온 이후로 수업의 나머지 시간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수업했다. 의자에 앉을 수가 없었다. 똥꼬가 너무 아팠던 것이다.

 

"나 어릴 적에 이질 많이 앓아봤어. 배 아프고 설사는 기본이야. 누런 코처럼 그런 변을 봤어."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국어 선생님은  어릴 적 겪었던 배앓이 경험을 얘기했고 나는 누런 코 설사 몇 번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질이라는 전염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규의 증언은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성규는 양호실 가리개 뒤편에서 바지를 내리고 엉거주춤 간호사 선생님을 등지고 있었다. 팬티까지 마저 내리라는 지시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도 어쩔 수 없이 그것까지 내렸다. 그다음 자세는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추켜올려 검사부위를 도드라지게 만들어 놓는다. 간호사 선생님은 긴 검사용 면봉을 똥꼬에 쑤욱, 깊숙이  집어넣는다. 그때 전해지는 똥꼬의 아픔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성규는 절규했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경악했다. 교실은 발칵 뒤집혔다. 설사만 몇 번 하면 되겠지의 생각은 검사 과정의 모욕과 치욕의 현장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그다음부터는 수업 중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화장실을 급히 가야 하는 아이에게 모두의 염원을 담아 우리는 외쳤다.


"굵은 똥이여 나오게 해 주세요!!!"


시골의 작은 중학교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이질은  추석을 기점으로 잠잠해졌고 우리는 뜨거운 안녕을 고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결국 이질의심으로 학교에 오지 않은 아이는 3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이질균을 덕지덕지 붙이고 퇴근을 하는 건 아닌지, 나로 인해 집의  식구들까지 옮기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불안, 나를 감싸던 공포는,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세한 균이 만들어낸 감정이었다. 정체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의 전파 속도는 무섭도록 빠르다. 공포와 두려움은 사람들 사이에 감정이입의 속도가 더 빠르게 일어나고 그 효과는 상대에게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고 상대는 또 나에게 다시 전달한다. 서로 각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두려움과 공포는 서로에게 오직 그것만을 발산하게 한다.


공포와 걱정, 두려움의 감정은 우리 사이에 가장 빠르게 퍼지는 감정이 아닐까.


하지만 보잘것없는 우리 인간 하나하나가, 어느 쪽으로 향할지 알 수 없는  것들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사랑이다. 2020년 코로나가 우리 사회를 강타했을 때 내가 사는 대구는 엄청난 속도로 확진자가 늘어갔다. 우리는 스스로 외출을 자제했고, 모든 모임과 지역 내 활동은 멎었다. 사람들과 활발히 유대하던 사회는 서로 단절되었고 모든 곳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하지만 우리는 카카오톡 단체톡방을 통해 소통했다. 비대면의 공간에서 여전히 서로의 안녕을 뜨겁게 물었고, 타지에 나가있는 가족과 지인들은 고향이 염려되어 매일 전화를 주었다.  우리의 뇌는 병원균과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불안을 사랑으로 번역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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