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은 잘 주무셨어요?"
내 책상 옆에 앉은 여자는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보아하니 한 잠도 자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씹던 껌을 쓰레기통에 뱉어 내고는 그녀의 진술을 받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자, 그럼 어제 했던 얘기를 다시 정리해 볼까요? 그러니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다구요?"
여자는 고개를 들더니 비교적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그렇군요. 그 사람이 누군데요?"
"모르겠어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모르는 사람을 왜 죽였어요?"
여자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리 길지는 않았다.
"전 어제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안 좋은 일이 있어서요. 꽤 취해있었어요. 그때 어떤 남자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길래 그에게 다가갔어요.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나눴어요. 그는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제가 하는 얘기들을 묵묵히 다 들어줬어요. 그래서 나는 그만 방심하고 말았던 것 같아요. 난 외로웠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에게 그만 제 비밀을 말해줬어요."
"그 비밀이 뭔데요?"
나는 기계적으로 물었다.
"그건 이 사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여자가 발끈 화를 내기에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좋아요. 어쨌거나 그 남자가 그 비밀을 가지고 협박이라도 하던가요? 그래서 죽였어요?"
"아니, 아니에요. 그는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우리는 그렇게 술을 마시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 헤어졌어요.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묻지 않았어요. 서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죠. 저는 택시를 잡으려고 잠시 길 가에 서 있다가 그 남자를 쫓아가 골목길에서 벽돌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어요. 아마 한 5번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요."
"왜 그 남자를 죽인 거죠?"
여자는 다시 침묵했다. 이번 침묵은 꽤 길었기 때문에 나는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
"그 사람이 내 비밀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말해줬다면서요. 게다가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잖아요. 대체 뭘 걱정했던 겁니까?"
"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여자가 나직이 말했다.
"난 그 남자가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거나 내 비밀을 떠벌리고 다닐까봐 죽인 게 아니에요."
"그럼요?"
"내 비밀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기 때문이었다. 진술을 마친 여자는 평안해 보였다. 자신은 비록 살인자가 되었지만 이제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 듯했다. 여자가 돌아간 후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했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모든 게 단순한 오해였음을. 여자가 죽인 남자는 일본인 관광객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저 예의상 여자가 혼자 떠드는 걸 모른 척 들어줬을 뿐이었다. 만약 그가 여자에게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그들은 유쾌하게 헤어졌을 것이고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남자는 결국 여자의 비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비밀 때문에 죽은 것이다. 여자가 이 사실을 안다면 뭐라고 할까?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 그동안 [잉여와 잉어와 인어의 우화]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