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화분을 들고 나가자마자 현태는 곧바로 가게 문을 잠가버렸다. 또 손님이 들어올까봐 겁이 났다. 그는 실내 불까지 꺼버리고는 어두컴컴한 가게 안을 서성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는 중에도 여전히 손은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꼴이람. 자신의 몸이 염려되기보다는 당장 분통이 터져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잘 숨기고 있던 자신의 정체를 들키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한참이나 안절부절 못하던 그는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마담에게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런 몸 상태로 마담을 만난다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는 마음이 조급했다.
'지금 만날래요?'
현태가 문자를 보낸 지 2분도 채 되지 않아 곧바로 답장이 왔다.
'30분 있다가 갈게'
현태는 그제야 헐떡이던 숨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한 가지는 있는 것이다.
그는 막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거리로 달려 나가 택시를 잡았다. 그의 차가 가게 옆에 주차되어 있었지만 이 상태로는 운전할 수 없었다. 그는 팔짱을 꽉 낀 채 택시 뒷좌석에 앉았다. 택시 운전사가 자신의 몸 상태를 눈여겨볼까봐 신경이 곤두섰지만 정작 운전사는 그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운전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통령 담화 뉴스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현태는 긴장을 풀고 택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조그맣고 침침한 택시 내부와, 은은한 방향제 냄새와, 택시 운전사의 무정한 뒷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대로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외국어처럼 귓속을 웅웅 울렸다. 몸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드는가 싶더니 대신 묵직한 무력감이 그를 내리 누르기 시작했다. 아니, 그를 내리 누르는 것은 바로 자신의 머리였다. 그의 머리가 쇳덩이처럼 그의 목과 어깨를 짓누르며 몸 전체를 점점 쭈그러트리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리를 뽑아서 옆 좌석에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뒷목을 괴었다. 그의 뒷덜미는 어느새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사이 택시는 베르사유 모텔 앞에 도착했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택시에서 빠져나왔다. 갑자기 넓은 장소로 나온 탓인지 다리가 휘청거리며 거의 주저앉을 뻔 했다. 여전히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손 떨림이 잦아든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마담으로부터 온 문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은 걸로 봐서 마담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태는 구부정한 몸을 이끌고 모텔 카운터에서 직접 열쇠를 받아 202호로 올라갔다. 우선 땀에 젖은 몸부터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어디론가 둥둥 떠내려가는 사람처럼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잠시 후 누군가 몇 번이나 부르는 소리에 현태는 간신히 눈을 떴다. 호피 무늬 코트를 입고 자신 앞에 서 있는 오마담이 엄청난 거인처럼 보였다.
“방을 잡았으면 나한테 문자를 줬어야지. 방 한 개 더 잡을 뻔했잖아.”
그녀는 투덜거리며 코트를 벗어 던졌다. 생고기처럼 선명한 빨간색 블라우스가 불시에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자극적인 색깔에 현태는 자신도 모르게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갔지만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얼굴이 왜 그래? 또 몸이 안 좋은 거야? 그럼 들어가서 쉬지 왜 만나자고 했어?”
“아뇨.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요. 잠깐만, 저기, 텔레비전이라도 좀 보고 있을래요?”
현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마담은 반쯤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반쯤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현태를 내려다보더니 별안간 안색을 바꾸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내가 해줄까?”
오마담은 현태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납작한 어깨를 흔들며 블라우스를 벗어재꼈다. 이어 브래지어까지 벗어 던지더니 누워있는 현태의 무릎 사이로 바짝 다가왔다. 커피색 스타킹에 검은 치마, 그 위에 하얀 나체를 들어낸 모습은 그녀를 훨씬 젊어 보이게 했다. 아니, 그보다는 마치 시간을 초월한 어떤 존재인 것만 같았다. 시간 이상이어서가 아니라 시간 이하라서, 시간의 최변방, 햇빛이 새는 창고 구석, 이미 소유권도 폐기되고,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언제까지나 방치된, 단종된 재고, 도태된 부산물, 초창기 샘플, 먼지조차 없는 미끈한 어떤 것.
현태는 마담이 자신의 청바지를 벗기는 모습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뭘 하려는 건지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흥분될 만도 했지만 지금은 별다른 감흥 없이 면구스럽기만 했다.
“이런 거 누가 해준 적 있어?”
마담이 그의 팬티를 벗기며 가느다랗게 눈웃음 쳤다.
“아뇨.”
“정말? 처음이야? 경애도 안 해줬어? 이야, 나도 사실 이거 아무한테나 해주는 거 아닌데, 오늘만 특별히 서비스 하는 거야.”
그녀는 긴 생머리를 한 손으로 말아 쥐고 그에게 머리를 수그렸다. 현태는 간지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몸서리가 쳐져서 다리를 뒤틀었다.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꼼짝하지 않고 그녀에게 온전히 몸을 내맡겼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녀가 아무리 공을 들여도 그의 몸은 반응이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현태가 먼저 당황했고, 나중에는 마담마저 당황하고 말았다. 한참을 매달려 있던 마담은 결국 고개를 들더니 침대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침을 뱉고 손가락으로 입술 안쪽을 훑어냈다.
“뭐야. 오늘 정말 많이 피곤한가봐.”
“네.”
그는 이빨을 갈며 대답했다. 미안하다고 얘기할 뻔 한 걸 꾹 참았다.
“아무리 그래도 젊은 사람이 그러면 써?”
애써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그녀의 얼굴도 붉어졌다. 그녀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담은 끌어내렸던 그의 팬티를 다시 올려주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브래지어와 블라우스를 다시 주워 입었다.
“가려구요?”
그는 상채를 일으키며 다급하게 외쳤다. 하마터면 그녀의 블라우스라도 잡아 끌 뻔 했다.
“가야지. 더 할 일도 없는데.”
“좀 쉬었다 가요.”
“아유, 됐어. 가서 가게 열어야지.”
그는 그녀에게 좀 더 머물러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태씨, 내가 오늘 건 그냥 반 만 받을게. 알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할 만큼 했으니까.”
강렬한 붉은색이 호피무늬 코트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초여름을 앞두고 입기에는 좀 더워 보이는 코트였다. 현태는 몸을 돌려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마담에게 주었다. 그녀는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 꺽달진 손가락으로 지갑에서 돈을 꺼내 착착 세어 보더니 나머지는 도로 지갑에 넣어주며 말했다.
“이걸로 비타민이라도 사먹어, 응? 안색이 말도 못해. 그리고 앞으로는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연락하지 마. 나도 돈 값을 해야 마음이 편하지.”
마담은 어린아이에게 하듯 현태의 턱 끝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빠져 나갔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현태는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밤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는 이불 속에서 사지를 꼼지락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숙면을 취한 덕인지 한결 몸이 가벼웠다. 여전히 어깨와 허리가 뻐근했지만 아까와 같은 경련은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모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창가에 놓인 노란 의자에 몸을 던지고는 오늘 처음으로 두 다리를 쭉 폈다. 오늘은 참으로 번거로운 하루였다. 몸도 아프고,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고, 창피한 일투성이에, 한마디로 면목이 서지 않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오늘보다 조금 더 낫거나 혹은 조금 더 못한, 그저 고만고만한 하루들 중 하루일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현태는 고개를 들어 빽빽하게 치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둘러보았다. 집집마다 불이 밝혀져 있었고 창문에는 간간히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모두 분주하고, 의젓하고, 또 태평한 모습들이었다. 그는 어쩐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철도, 경애도, 심지어 오마담도 저 칸칸이 나뉘어있는 네모반듯한 아파트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자신만은 이 창가에 앉아 그들을 훔쳐보고 있는 걸까.
딱히 어떻게 살고 싶다고 확신해 본적은 없었다. 다만 막연하게나마 세상의 얕은꾀와 속물근성을 비웃으며 살아가고 싶었다. 진지하고 심각해질 거라곤 없는 이 세상에서 좀 더 무심하고 유유하게 처신하고 싶었다. 삶은 완벽하게 허무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비밀에 부쳐 두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오히려 자신이 알고 있는 건 변변치 않은 것들뿐이고, 모두들 공공연히 알고 있는 진짜 중요한 사실을 자신만 모른 채 딴청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닐까? 알려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당연해서 아무도 그에게 알려주지 않은 게 아닐까? 그렇게 그는 그 누구보다 속물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현태는 다시 두통이 일어나는 것 같아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그의 삶은 온통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탄산수 속으로 녹아내리는 설탕 덩어리처럼 하루하루가 깊은 불신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건 고단한 일이었다. 그는 부글부글 부풀어 오르는 불안을 삭이려고 애쓰며 아스팔트길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그 어느 때보다 분명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