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는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쇼윈도 바깥에 놓인 가판대에 쭈그리고 앉아 화분을 진열했다. 6월 초여름의 햇살이 벌써 제법 강렬했기 때문에 차양 그늘이 지는 곳에만 화분을 놓았다. 잠깐 동안이었는데도 햇빛을 등진 그의 등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겨드랑이에는 땀이 차올랐다.
꽃봉오리가 큼직하게 여문 화분들로 보기 좋게 진열을 마친 뒤, 나머지 화분들을 챙겨서 가게로 들어가려다 말고 현태는 잠시 허리를 펴고 거리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파랗게 맑았고 청결한 햇빛과 선명한 그림자가 기분까지 명쾌하게 해주는 날이었다. 찻길을 따라 좁은 골짜기처럼 솟아오른 하얗거나 까맣거나 혹은 잿빛의 빌딩들도 오늘만큼은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벌써 한여름이라도 된 것처럼 반팔이나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 젊은 아가씨 두 명은 거의 엉덩이에 바짝 붙다시피 한 핫팬츠를 입고 발레리나처럼 발꿈치를 쳐들게 되는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햇빛을 받으며 엇갈리는 그녀들의 하얀 다리가 정말 하얀색이기라도 한 것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이번 여름에는 핫팬츠가 유행하려나. 현태는 그녀들의 허벅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으면 여름 휴가철이 오겠지, 아니, 그 전에 장마가 먼저 오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꽃집은 한겨울보다 한여름이 더 비수기였다. 장마인 7월 초부터 휴가철인 8월 까지는 가게세도 내기 힘들 정도로 손님이 뚝 끊겼다. 그가 아는 어떤 꽃집은 휴가철인 한 달 동안 아예 가게 문을 닫아버릴 정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8월에는 자신도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야겠다고 현태는 마음먹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실컷 자고 실컷 쉬고 나면 발작처럼 찾아오는 두통과 손 떨림도 사라질 것이다. 그럼 또 그럭저럭 살만해 지겠지.
그 때 뒷주머니에 꽂아놓았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지 않고도 어머니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는 어제 어머니 집에 가는 날이었지만 오마담과 함께 있느라 가지 않았다. 전화기도 일부러 꺼놓았었다.
“네, 여보세요.”
“그래, 나다.”
“예, 엄마.”
“너, 어저께 왜 집에 안 왔니? 전화기는 왜 꺼져있었고?”
“저녁에 친구 좀 만나느라구요. 전화기는 빠데리가 없어서 그냥 꺼 놨었어요.”
“친구를 만났다고? 친구 누구?”
“대학 때 친구인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네가 아직도 연락하는 대학 친구가 있어? 누구?”
“창석이요.”
그는 되는 데로 이름을 지어냈다.
“그래?”
창석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녀는 마음이 누그러졌다. 대학교 때 친구라면 적어도 현태보다는 성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태가 장사치들이 아닌 번듯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현태도 마음을 바꿔서 지금부터라도 다른 일을 알아볼지 모른다.
“그럼 오늘 와서 저녁이라도.......”
그 때 어디선가 와장창 하는 큰소리가 나는 바람에 현태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소리가 바로 옆 수철의 가게 쪽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무언가 가차 없이 부서지는 소리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온통 불길하게 만들었다.
“엄마, 끊어야겠어요.”
미숙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현태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수철의 가게로 달려갔다. 놀란 몇몇 행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철의 가게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현태가 막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서려는데 벌컥 문이 열리며 수철이 밖으로 튀어 나왔다.
“야, 수철아.”
현태는 재빨리 운을 때다 말고 그만 말문이 막혔다. 수철의 얼굴은 꺼무죽죽하게 젖은 시멘트 덩어리 같았고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은 끈이라도 끊어진 것처럼 제멋대로 흔들거렸다. 얼굴의 근육들도 미묘하게 뒤틀려서 수철이 아니라 수철을 닮은 누군가로 보일 지경이었다. 만약 지금 이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현태에게 들이밀었다면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유리알처럼 반들거리는 수철의 눈빛에 현태는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수철은 눈앞의 현태가 아예 보이지 않는지 그의 옆을 지나 휘적휘적 찻길 쪽으로 걸어가더니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입도 다물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던 현태는 수철이 탄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다 방금 봤던 수철의 얼굴이 너무나 괴괴했기 때문에 현태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는 다른 구경꾼들과 함께 수철의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가게 한가운데에는 뒤집어진 책상이 나뒹굴고 있었고 부서진 진열대의 큼직한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흉측하게 흩어져 있었다. 내팽개쳐진 핸드폰들과 컴퓨터 모니터, 화분 등의 집기들도 하나같이 산산조각난 채였다. 가게 바닥은 유리와 흙과 플라스틱 조각들이 뒤섞여 뭐라 표현하기 힘든 섬뜩한 이질감을 주었다. 그 광경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던 현태는 수철이 불도 켜놓고 문단속도 하지 않은 채 가버렸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가게로 들어가 전등을 끈 뒤 가게 입구에 '오늘은 쉽니다'라고 써놓은 종이를 붙여 두었다. 지금의 사태에 비해 너무나 안일하고 소박한 문구가 누구보다 현태 자신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설사 비명 소리를 글로 적어놓는다 할지라도 문자가 비명을 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현태는 자신의 가게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퇴근도 미루고 수철을 기다렸지만 수철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현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철의 가게를 들여다봤지만 수철은 나타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쉴 새 없이 전화를 해보아도 받지 않았다. 이제는 걱정보다도 궁금증 때문에 현태는 몸이 달았다. 마지막 날 보았던 수철의 얼굴이 도무지 잊히지가 않았다. 비유하자면 영화에 나오는 좀비와 흡사했는데 살아있었지만 분명 죽어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도록 수철은 가게에 나오지 않았다. 가게 내부도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아예 발길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 낯선 남자들 서너 명이 종종 가게 주변을 서성였다. 그 중 갈색 잠바를 입은 남자는 현태의 가게까지 찾아와 수철의 행방을 묻기도 했다. 뾰족한 코와 단단한 턱, 빽빽한 머리숱, 걸걸한 목소리가 형사 아니면 깡패라는 인상을 주었다. 현태는 수철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고 -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 남자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까봐 겁이 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날씨는 점점 무더워지고 습기도 덩달아 높아졌다. 장마가 바로 코앞이었다. 몇 년 전부터 ‘장마’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비가 대중없이 내리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제법 장마다운 장마가 될 거라고 기상청은 예보하고 있었다. 현태로써는 찔끔찔끔 잔비가 내리느니 차라리 폭우가 쏟아지는 편이 좋았다. 그런 날은 고양이들도 나돌아 다니지 않았고 차들도 천천히 운행하기 마련이었다. 현태는 퇴근하기 위해 앞치마를 벗어 의자에 던져 놓다가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그 자리에 수철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야! 이 자식.”
현태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수철에게 달려들었다. 수철은 몇 시간 동안 제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던 사람처럼 온 몸이 굳어 있었다. 어쩌면 정말 꽤 오래 그렇게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운 날인데도 불구하고 철지난 청색 잠바를 입고 있는 수철의 얼굴은 도무지 말이 아니었다. 한 달 전 가게 앞에서 보았을 때만큼 괴상한 기운을 풍기고 있지는 않았지만 잿빛 얼굴에 살도 많이 빠지고 입술이며 볼 전체가 푸석푸석하게 일어나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현태는 수철을 소파에 끌어다 앉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