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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42)

by 곡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장마다운 장마가 될 거라던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비는 오락가락 하며 지지부진했다. 흐물흐물하고 몽롱한 날들이 며칠 째 계속되었고 약속이나 한 듯 손님이 뚝 끊겨서 가게는 한낮에도 을씨년스러웠다. 거기다 엉망으로 어지럽혀진 채 한 달 넘게 방치되어 있는 옆 가게 때문에 현태는 더욱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오늘은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전에 다녀갔던 선영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현태는 7시도 되기 전에 벌써부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두 시간 더 있어봐야 손님이 올 것 같지 않았고, 또 그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손님이 온다 해도 달갑지 않았다. 거리는 짙은 비구름 때문에 이미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물기를 먹어 젖은 솜처럼 잔뜩 무거워진 어둠이었다. 축 늘어진 가로수 위로 큼지막한 빗방울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서로 우산을 부대끼며 퇴근하는 행인들의 발걸음에도 축축한 침울함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어서 빨리 집안 구석으로 숨어들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현태는 가게 문을 잠그고 우산을 펴들다가 문득 수철의 가게에 시선이 멈췄다. 불 꺼진 쇼윈도 유리창에 거리의 불빛이 지저분하게 번들거렸다. 이제 저 가게는 어떻게 되려나. 보증금을 빼서 빚을 갚아야 될 테니 곧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겠지. 그럼 무슨 가게가 새로 들어올까. 아무래도 또 핸드폰 가게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수철의 가게 안을 들여다보던 현태는 깜짝 놀라 뒤로 몸을 숨겼다.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기 때문이다. 수철일까? 아니면 잠겨있지 않은 문으로 부랑자라도 들어간 걸까? 현태는 고개를 길게 빼고 조심스럽게 안을 살펴보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누군가가 구석에 놓인 탁자 앞에 앉아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철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현태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채 수철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수철은 홀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론 수철이 엄청난 고통과 절망에 짓눌려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것은 깊은 어둠 속으로 삼켜지는 그의 불길한 그림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부서진 유리와 집기들로 폐허가 된 가게 내부도 수철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했다. 하지만 현태는 그 이상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저렇듯 괴로워하며 웅크리고 있는 수철을 바라보면서도 아무 것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현태는 수천 번쯤 되뇌었던 말을 자동 기계처럼 또 한 번 자신에게 뇌까렸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할까? 과연 우리가 그 정도 사이인가? 결국 자신과 수철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완전한 타인이라는 사실만 더 확연해질 뿐이었다. 현태는 곱아든 손으로 슬며시 우산을 받쳐 들고 발소리를 죽이면서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 강풍과 비가 뒤섞여 내리더니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스산한 날들이 열흘 이상 계속 되었다. 그래도 서서히 장마가 끝나가고 있어서 간간히 하늘이 맑게 개기도 했다. 오늘도 흐린 하늘에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서쪽 구름 사이로 옅은 파란색이 어른거려서 내일은 날씨가 갤 거라는 기대감을 내보이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늦잠을 잔 현태는 11시가 다 되어서야 출근을 했다. 어차피 손님도 없을 게 뻔해서 급할 것은 없었다. 잡다한 생각에 잠겨 느릿느릿 가게 앞에 도착한 그는 사람들이 수철의 가게에서 가구며 잡동사니들을 빼내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녀 둘이 가게 안에서 물건들을 옮기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반백의 머리에 수수한 차림들이었다. 드디어 가게 임대가 나갔나 싶어 현태는 얼른 다가가 그들에게 말을 붙였다.

“저기, 실례합니다. 여기 새로 들어오셨어요?”

남녀는 시큰둥하게 현태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지치고 지겹다는 얼굴이었다. 남자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요. 물건 빼는 중입니다.”

“물건을 빼는 중이라구요? 아니, 누구신데 물건을 빼세요? 여기 사장하고 얘기가 된 겁니까? 혹시 월세가 밀렸다고 주인이 시킨 거예요?”

“왜 남의 일에 참견이요. 댁은 누구신데 그래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남자가 되물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여전히 심지가 없었다.

“나는 여기 옆에서 꽃집 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사장하고도 잘 알구요.”

현태의 말에 남녀는 눈을 끔뻑이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멍청한 표정들이었다. 이제까지 아무 말도 없던 여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나는 수철이 엄마 됩니다. 저기는 아버지구.”

“아아, 네에,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몰라 뵈었네요.”

현태는 당황한 나머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하지만 여자는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미처 여기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연락을 못했네요.”

“네?”

“그러고 보니 종종 꽃집 사장님 얘기를 했었는데.”

그러더니 그녀는 현태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는 얼떨결에 손을 잡힌 채 그대로 있었다. 무슨 일인지 다 알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예전부터 다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영영 모를 것 같기도 했다. 발 아래 디딤판이 사라지고 그는 허공에 멀뚱히 떠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새까만 눈가에 지저분한 눈물이 번졌다.

“수철이가 죽었어요.”

“네?”

“죽었어요. 자살했어요.”

“네?”

“자살했어요. 일주일 전에 사단이 났어. 5일 전에 화장했고.”

뒤에 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는 어느새 입에 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현태는 순간 질겁해서 그녀에게서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녀가 작은 손으로 워낙 억세게 잡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수철이요? 수철이가요?”

“네.”

“아니, 저기, 얼마 전에도 저기 앉아 있었는데…….”

하지만 이미 가게 안은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자살했어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또 강조했다. 마치 수철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수철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듯이. 마치 자살과 죽음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듯이. 마치 수철은 자살한 것이지 죽은 게 아니라는 듯이. 남자가 가래침을 뱉어내더니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말했다.

“독한 새끼가,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어. 14층 그 높은데서. 비가 그렇게 오는 날에.”

현태는 남자의 코에서 뿜어져나오는 새하얀 연기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들어있던 콩알만 한 무언가가 순식간에 수 천 수 만 배로 부풀어 올라 눈구멍이며 귓구멍이며 입이며 모든 걸 막아버린 것처럼 먹먹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기, 저번에, 저한테, 돈을 꿔달라고 했었는데…….”

다짜고짜 그가 뱉어낸 말은 엉뚱하게도 이것이었다. 사실 그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도 이것이었다. 이제 망했다고, 어떻게 하냐고, 큰일 났다고, 제발 날 좀 살려달라고 매달리던 수철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300만 원 정도는 해 줄 수 있다고 했던 자신의 대답도 뒤통수 어디쯤에선가 들려왔다. 그는 몸서리를 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뜨다가 수철의 어머니 얼굴이 흙빛으로 굳어져 있는 걸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서, 빌려 줬나요?”

그녀가 경직된 목소리로 물었다.

“수철이에게 돈을 빌려 줬어요?”

“아니, 저기, 아니오. 그게, 저도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말을 끝내기도 전에 현태는 이제 흉한 꼴을 보겠구나 짐작했다. 수철의 어머니가 불같이 원망을 쏟아내겠지, 멱살을 붙잡고 늘어져 대성통곡이라도 하면 어쩌나, 수철의 아버지가 당장 달려들어 자신의 뺨이라도 후려갈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현태는 자신의 눈앞에서 300만원이 갈가리 찢겨나가 종이쪼가리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내리는 듯 했다. 회한 때문에 그는 온 몸이 떨렸다. 하지만 곧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떠오르는 걸 보고 현태는 정신을 차렸다.

“잘 하셨네요.”

그녀가 그의 손을 더 꽉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 이미 뻣뻣하게 굳어 나무토막 같은 그의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했어요. 잘 한 거예요. 우린 이미 많은 빚을 졌어요.”

수철의 아버지가 꽁초를 바닥에 내던지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보다 더 깊은 고단함이 배어 있었다.

현태는 자신의 가게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꼼짝도 하지 않고 옆 가게의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후 옆 가게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현태는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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