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서 큰 닭 두 마리와 병아리 세 마리를 데려왔다. 갈 때는 분명 사러 간 것인데 ‘됐다고 됐다’고 해서 그냥 데려오게 된 것이다. 앞집 아주머니는 적성 장 어디에 가면 닭을 파는 곳이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줬는데, 귀한 닭을 고상하게 키우는 분이 계시다고 해서 멀리 홍성까지 오게 된 것이다. 가서 처음 알았다. 닭 키우는 사람들의 동호회가 있다는 것도, 그들의 밴드가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닭들도 많고 종류도 가지가지라는 걸.
닭들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중학교 때 농업 시간에 배운 알 잘 낳은 닭 레그호온인가 하는 것들과 모양은 비슷했는데 그런 종류는 아니라고 했다. 토종닭도 있고 미국 닭도 있었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한 마리가 있었다. 주인장께서 골라 보라고 하자 아내는 대뜸 염치 없게도 그 녀석을 골랐다. 원 픽. 주인장도 분명 총애할 것 같은 토종닭이었는데 선뜻 주셨다. 겉으로는 기꺼이지만 속으로는 마지못해서 주었을 듯했다. 나머지 큰 닭 한 마리는 주는 대로 받았고, 작은 닭장을 고려해서 병아리 세 마리를 가져왔다. 알에서 방금 깐 노란 병아리는 아니고 조금 큰, 한 달쯤 자란 병아리였다. 하양, 검정, 회색. 손녀 이현이가 닭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닭 대가리라는 말이 있는데, 지능은 모르겠고 닭 눈은 확실히 어두웠다. 처음에 개 케이지를 가져갈까 했는데 밝은데 닭이 갇히면 난리가 난다고 가져오지 말라고 해서 그냥 갔다. 방법은 간단했다. 종이 상자에 그냥 숨구멍을 뚫고 거기에 그냥 넣어 오는 것이다. 닭장에서 잡을 때는 그렇게 부산하고 재빠르게 도망가던 놈들이 상자 속에 갇히자 신기하게도 푸다닥거리는 소리 하나 없었다. 무려 세 시간이 넘는 동안. 하도 조용해서 오면서 차 안에서 이놈들 다 죽은 거 아냐 걱정할 정도였다. 얘들도 박스 속에서 긴장했는지 와서 보니 바닥에 닭똥이 가득했다.
홋카이도에서 중앙아시아까지 강제이주당한 우리 고려인 동포들처럼 홍성에서 파주까지 세 시간 넘는 장시간 닭들의 장거리 이주는 마무리되었다. 박스에서 닭을 꺼내자 닭들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 이후의 문제는 닭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닭장에 넣어놓고도 안심이 안 되어서 가보고 또 가보고를 여러 차례 한다. 조그만 병아리들이 저 높은 횃대에 올라갈 수 있나? 저 망이 약하다는데 바깥 짐승이 해치지 않을까? 저 바닥 밑으로 쥐들이 파고 들어오지 않을까? 잠자리에 들었다가 닭장에 다시 가보기도 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닭장에 가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병아리를 숫자와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원픽은 실제 어미가 아닌데도 병아리들을 잘 돌보았다. 밤에 병아리들이 없어 확인해 보면 한 마리는 원픽이 등에 어부바 하고 있고, 다른 것들은 원픽의 날개죽지 속에 들어가 있다. 다른 한 마리는 무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동작이 굼뜨고 돌아다니지 않고 자주 앉아 있어 어디 아픈가 했는데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니 죽어 있었다. 이주 일주일만이었다. 다른 것들이 멀쩡한 걸 보면 전염병은 아닌 것 같고, 외부 침입 흔적도 없고, 이 선생한테 물어보니 특별한 이유가 없으니 아무래도 강제이주에 대한 신병 비관 자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럼 나는 뭐야? 자살방조?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