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 곰파에서 생각, 탁상라캉)
탁상곰파, 힘겹게 올랐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절집을 돌아본 느낌은 그들의 기도는 대단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그랬고, 처절한 기도가 그랬으며 일상의 생활이 그랬다. 한참의 여유를 보이며 절집을 돌아보고 나와 보니 어느덧 비는 그치고 햇살이 나타난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절집에서 바라보는 파로시내는 하얀 안개에 묻혀 보일 듯 말 듯하다. 절집을 벗어나 다시 온 길을 뒤돌아 오는 길은 상쾌하기만 한데, 뒤돌아보는 절집은 아스라이 언덕 위에서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가파른 언덕에 가까스로 매달린 절집에 매료되어 연신 사진을 찍고 찍어도 돌아서면 다시 좋아 또 사진을 찍는다.
대단한 기대 속에 만났던 탁상곰파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은 한가하기만 하다. 중간에 위치한 전망대 밑에 적당한 레스토랑이 있어 점심을 해결하러 들렀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탁상라캉는 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본 언덕은 또 봐도 신기하고, 점심을 절집이 보이는 곳에서 먹기로 하였다. 맥주가 곁들인 환상적인 장소에 비해 먹거리는 그렇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그럴듯한 장소에 지어진 레스토랑은 엄청난 비경을 갖추고 있는 것에 반에 준비된 음식의 맛은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우리의 입맛에 그러하겠고 현지인들이야 대단한 음식이었을 것이리라. 간단히 점심과 맥주를 곁들이면서 바라보는 탁상라캉은 여전히 대단한 위엄을 갖추고 있다.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대단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점심을 주문하여 먹을 장소를 잡는 것도 신경전이 한창인데, 우리는 운이 좋게도 일등석에 자리를 잡았다. 히말라야의 구름이 하얗게 드리웠고, 그 위에 아스라이 매달린 절집은 아래를 굽어보며 호령을 하고 있는 곳이다. 목이 아프도록 절집에 반해있다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렇게 하여 탁상곰파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은 서늘한 바람과 울창한 숲이 엄청난 즐거움음 선사한다. 친구 내외는 아직도 미련이 남아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오를 때의 어려움에 비하면 내려오는 길은 훨씬 수월하다. 곳곳에 흐르는 시원한 골짜기 물에 세수도 하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며 내려온 입구에는 많은 상인들이 사람들을 부르지만 얼마 되지 않는 관광객에 실망하고 마는 눈치다. 하지만 여느 관광지와 같이 적극적으로 사람을 부르거나 물건을 팔려하지 않음에 그들의 삶을 살짝 볼 수도 있다. 호텔로 가는 길에는 뉘엿뉘엿 해는 지고 하교하는 학생들이 평화롭기까지 하다. 우리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부탄은 지상의 낙원은 아니었고, 엄청난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었으며 더구나 위대한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하게 생각하게 하고 생활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엄청난 부를 생각하는 개발과 질주가 아니라 현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엄청난 개발을 자제하는 능력과 현재를 만끽하며 서서히 그들만의 삶을 추구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들은 부탄을 찾아 희희낙락하는 여행객을 맞이하면서도 엄청 부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옆 식탁에서 술을 마시며 희희낙락하는 여행객을 보면서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다만, 남들의 삶에 관계없이 그들의 텃밭에서 기르는 상추를 양념이 없는 날 것으로 씹어 먹는 인고의 세월이, 그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부탄 여행은 만족해도 되리라.
외국 여행객을 무한정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숫자만 받아들인다. 그들의 자연을 보호하면서 자국민의 일자릴 보장하기 위한 가이드나 기사를 배치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정책은 수긍이 가는 제도였다.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한 유흥업소나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전혀 물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의 이런 모습은 언제까지나 유지될 것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아직은 꼿꼿하게 나름대로의 방법이 유지되는 듯해 부럽기도 했다. 수도로서의 도시가 그랬고, 살아감의 철학이 우리와는 달랐으며, 하루하루의 삶의 궤적이 우리와는 전혀 다름이 부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