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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May 28. 2020

어느날 파리에서, 진짜를 말하다

혼을 담는 소리꾼 -장사익-


재작년 이었나,
한국 캘리그래피 10주년 전시에 다녀온 적이 있다.
우연히 그곳에서 장사익 선생님을 뵈었다. 그래서 오래전 그날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쳤는데,
한 10년 전쯤 부모님과 예술의 전당에서
장사익님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어릴 때였음에도,
심연에서 끄집어내는 소리를 넘어
혼을 불어넣고 토해내며 부르는 노래는
그저 노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온몸에 이상한

전율이 흐르는 것을 감지했다.


전통 창가나 19세기 초반까지의 곡들은
우리나라 특유의 한이 서려 있다.
이전에 취미로 관심을 갖고
그 유래를 타고 타고 올라가 보니,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전통방식으로
장례의식을 치를 때 상여를 이용해 절차를 따랐다고 한다. 그 상여(일종의 가마 위에 만든 꽃장식 안에 시신을 안착해)를 여러 사람들이 들고 메고, 안장하는 곳까지 이동하며 상두꾼이 ‘상여가’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굉장히 유교적 정신사상이 깃든 행위이며 이승에서 저승으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의식이니 슬프고 한스러움 자체였다고 한다. ‘상여가’ 는 그 특수성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여 지는면이 있지만, 전통 창가는 왜? 라는 물음표를 갖고 생각 해봤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역사적 환경을 떠올릴수 밖에 없었다. 중국이라는 대국 옆에서 많은 제약과 불합리한 상황을 맞이하며 저항하고 꿋꿋히 견디어 온   역사, 거기에 왜세의 침략을 반복해 받아오며 역사적 아픔이 많은 민족의 어떤 항변이며 그 한이 만들어낸 일종의 민족정서인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을 사는 젊은 청년인 우리가
아리랑이나 민중가요를 들으면,
시대의 정서가 묻어나고
같은 시대를 걸어오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숙연해지기도 하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는 맥락이다.


민족정신이나 시대 정서나 한순간에
만들어질수 없듯이 시대를 대변해 노래하던
곡들은 단순히 유희와 격식을 위한 노래가 아니었다. 민중의 아픔을 달래고 희망을 불어넣어
단결시키는 찬가였기에 그 정신이 계승되어진다
생각한다.


장사익 선생님의 노래가, 소리가, 모습이, 그랬다.
이전에 선생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노래와 표현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또 천재적인 예술인이라는 칭찬에,


나는 천재가 아니다. 이것저것 전혀 다른 일을 전전해보고 천직을 만난 것이다. 소리꾼 이직업에 들어선 후로는 다른 일에 기웃거리지 않고, 아직까지 하고 있으니 나와 잘 맞는 일을 찾은 것뿐이다. 이렇게 돼야지 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있더라. 단순한 대답 같지만 일종에 복기와 환기가 동시에 다 되는 말씀 이었다. 타고난 소리꾼의 겸손한 말씀이었고, 또 어디 하나 틀린 말이 없지만,
왠지 그것들이 갖가지 어려운 고비와 한계에 도전하고 거친후에야 비로소 맞이하는 광야를 달리는 말처럼 자유롭게 느껴졌다.



출장중, 낡은 책들이 쌓여 있는 곳에 구경삼아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외국 시사지에 작지만 장사익 선생님 소개가 실려 있어서 자동으로 동그래진 눈이 한참을 머물렀다. 문화와 정서가 다른 이방인들이 장사익 선생님 소리를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괜시리 혼자 기대감 수직 상승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파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선생님은 또다른 새로운 의미있는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인연 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형성된 실체적 관계성립 만이 아닌, 이렇게 생각과 사상 교감 같은 것으로도 이어지게 할수도 있구나 하는것들 말이다.





-어느날 파리에서 남긴 하루의 마감글 from.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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