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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열시 Jan 23. 2024

No.2 퇴사

한번 배워보자.

1세대 커피 프랜차이즈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관리하던 매장이 줄어들었고, 직원수도 더는 늘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심 끝에 10년 동안 해오던 길을 그만두기로 했다.


사실 카페는 많아지고 있었고, 어디로든 이직을 해서 자리를 잡으면 되었었다. 주변에서도 내가 다른 길을 하는 것에 걱정스러운 듯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지쳤고, 더는 커피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도 않았다. 그저 이 기회에, 아니 이 핑계에 조금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무엇인가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일을 할 때도 틈틈이 온라인 강의를 듣곤 했었는데, 그 이유는 그냥 뭐라도 알고 있으면 좋지 않냐는 생각이었다. 


일은 그만뒀고, 시간은 많아졌다. 이 기회에 오프라인 수업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참 뒤적거리다, 눈에 딱 들어오는 교육이 있었다. 그것은 '전통가구제작'이었다.


전통가구제작은 원목을 사용하는 소가구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기간은 7개월로 제법 긴 시간 동안 교육을 진행했다. 신기하게도 시작하는 시간도 내가 퇴사하고 한 달 뒤부터였기에 나는 곧장 수강신청을 넣었다. 국비지원프로그램 사비를 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이렇게 가구를 제작하거나 하는 프로그램은 전액무료로 지원을 해준다. 


무엇보다 나는 실업급여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취업활동을 해야 하는데, 국비과정이 딱 그 활동에 해당했다. 





25명이 함께하는 전통가구제작 과정. 첫 수업은 당연하게도 서로 소개도 하고, 전반적인 학원 방침 등을 듣게 됐다. 분위기는 나름 괜찮았고, 강사분들도 열정이 넘치는 것이 배울 맛이 날 것 같았다. 




톱, 대패, 끌, 철자, 스토퍼, 그무게 이 6개의 장비를 먼저 구입을 하게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강생들은 강사가 추천만 하면 구입을 하게 되는데, 여기 학원은 참 고맙게도 딱 필요한 것만 구입하도록 유도했다. 누구나 그렇듯 내 장비를 딱 가지고 있으면 빨리 써보고 싶고, 얼른 뚝딱뚝딱 가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도 그랬었다.


가장 처음 만든 건, 작은 오버나이저다. 요즘은 대부분 집에서도 뚝딱 만들 수 있는 DIY형식의 작은 가구였다. 재료는 칠레송(소나무)으로 제작을 했는데, 목재를 재단하는 것부터 피스조립까지 전부 강사와 함께 진행을 하게 됐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볼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캐드도면도 보게 됐다.





수강생분들이 가장 많이 나가는 시점이 딱 처음 작업을 했을 때다. 나무를 켜는 것을 처음 봤고, 그 기계의 무서움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25명이었던 수강생은 4명이 나가서 21명이 되었고, 그렇게 첫 가구를 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오거나이저를 만들 자재를 준비했고, 순서에 맞춰서 조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일전에 어설프지만 셀프인테리어를 했었고, 침대 프레임도 직접 만들었었다. 그때는 피스를 박으면 쪼개지기 일쑤였는데, 그 이유를 여기서 배우게 됐다. 


나무가 쪼재 지지 않게 피스를 박아 넣으려면 가장 먼저, 나무에 피스의 굵기만큼의 구멍을 뚫어줘야 된다. 왜냐하면 단단하게 잡고 있는 나무에 피스라는 물체가 억지로 들어가게 되면 그만큼 부피가 늘어나게 되고 쪼개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피스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피스를 주야장천 박아 됐으니 다 쪼개지고 난리가 났었던 것이었다. 


사실 첫 수업이 DIY라고 했을 때, 별거 없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역시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면서 확실하게 알아갈 수 있었다. 




지금에서 보면 DIY가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나무 자재들끼리 딱 맞게 맞춰서 박아 넣어야 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DIY제품을 사서 조립을 하는 것은 공장에서 미리 구멍을 뚫어뒀기에 쉬운 것이었는데, 기계가 아닌 손으로 뚫으면 아무래도 오차가 발생하게 된다. 


사실 목수라는 직업이, 나무라는 소재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그만큼 더 매력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통가구를 처음 만들었을 때, 주먹장 짜맞춤을 했었다. 그때는 정말 그만 배울까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웠는데, 완성했을 때의 그 희열이 나를 지금까지 나무를 만지는 목수로 만든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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