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따뜻한 3월쯤에 가면 안 되겠니?
- 엄마, 처음엔 1월 말까지 있다가 가라고 했잖아. 그러다 구정 지나고 가라 하더니
이제는 3월이야?
- 네가 옆에 있어서 허전하지 않아 좋았는데, 네가 가면 어쩌나 싶다.
지난해 11월 초에 왼쪽 팔꿈치 수술을 하고, 계속 친정엄마 집에 있었다. 엄마는 나을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며 매일 나의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몸이 불편하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바쁘거나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들의 간호를 받는 건 애당초 어려운 일이었다. 그걸 잘 아는 엄마는 기꺼이 내 간병인으로 자처하신 것이다. 머리 감는 것에서 옷 입는 것까지. 한 손을 못 쓴다는 건 아주 사소한 일상적 행동들이 브레이크에 걸리면서 자유함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마치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들의 일상이 철창에 갇힌 것처럼 왼쪽 팔은 깁스에 갇혀 제재가 풀릴 때까지 움직일 수 없다. 비로소 자유로움을 잃어버리고서야 알게 되는 소중한 것들.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는 것, 양말을 신는 것, 병뚜껑을 열거나 따는 것, 과일을 깎는 것, 김치통을 드는 것, 설거지를 하는 것, 손빨래를 하는 것, 화분을 옮기는 것, 서류 봉투를 뜯는 것, 손톱을 깎는 것, 강아지 목욕시키는 것, 운동화 끈을 매는 것, 운전하는 것 등등.
엄마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나의 필요를 즉각적으로 채워주곤 하셨다. 자식도 못해주는 일을 늙은 부모가 해준다. 그것도 기꺼이.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빨아주는 옷을 입고, 엄마가 감아주는 머리를 빗고, 엄마가 챙겨주는 약을 먹으며 나는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아버지 역시 나의 짐을 들어주시고, 옮겨주시고, 물병의 마개를 따 주시고, 동네 한 바퀴를 함께 돌아주시고, 간식을 사다 주시며 어린 딸을 보살피듯 살뜰히 챙겨주셨다. 60이 된 내가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존재하는 부모님 덕분이다. 어느 누가 이 나이에 이런 호사를 누리는 어린아이가 될 수 있을까? 부모를 잃은 지인들은 하나 같이 나의 복을 부러워했다.
처음엔 한 달만 있다가 집에 가라는 엄마 말에 그리하겠다고 했다. 빈둥빈둥하던 나의 한 달은 속절없이 지나가 2020년 끝에 왔다. 2021년은 내 집에서! 그런데 이건 엄마에게 안 통했다. 엄마는 다시 구정 지나면 가라고 애처롭게 내 팔을 쳐다보신다. 그때까지 팔은 동정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회복이 더디었다. 동생들도 더 있다 가라고 권유한다. 나야, 좋지! 이때 아니면 언제 부모님과 같이 살아보나 싶어서 마음을 접었다.
나는 틈나는 대로 한 손으로 청소를 하고, 커피도 타 드리고, 엄마의 도움을 받아 샌드위치도 만들어 드리고,
보드게임도 가르쳐드리고, 히히히 호호호 웃음보따리도 펼쳐놓았다. 어느새 노부부만 사는 집 안에 딸의 온기가 가득해졌다. 그러는 사이 재활치료가 시작되고, 팔꿈치는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그렇게 시간은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조용하게 지나갔다. 구정도 지나고 2월도 지나 3월 문턱에 들어섰다. 그런데 언제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 놓고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 나는 법인데, 네가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네가 없으면 이 허전함을 어찌해야 할지. 더 있다 가면 안 되겠니?
엄마의 움푹 파인 볼이 실룩거린다. 작은 눈은 금방 촉촉해지고 입가의 주름은 더 자글거린다. 엄마의 마음 방에 내가 너무 크게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집으로 가겠다는 말만 나오면 엄마는 안절부절이다. 아버지가 말려도 엄마의 불안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입 맛도 없다 하시고, 잠도 안 온다 하시고, 의욕이 없다 하시고...
뼈에만 구멍이 숭숭 뚫리는 게 아니다. 세월에 풍화되면 마음도 골다공증처럼 크고 작은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구멍 안으로 삶의 슬픔과 회한, 불안, 두려움, 죽음의 공포 등의 검은 바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니 어찌 가슴이 시리지 않겠는가? 그나마 3개월 반을 함께 지내면서 내 존재가 엄마의 시린 구멍을 잠시 메워줬던 것 같다.
-처음 며칠은 허전함에 몸살을 앓겠지만 다시 괜찮아질 거야.
아버지와 동생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나를 다독인다. 그렇지만 엄마의 불안감이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하루 이틀 지나도 나아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엄마의 모습이 너무 늙어 보이기 때문이다. 허리에 복대를 차고도 당신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딸의 아픔만 보았던 엄마. 아직도 자식을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존재감과 그로 인한 기쁨으로 쪼글거리던 주름살까지 펴게 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숨어 있던 주름들이 짙은 그림자를 끌고 나와 엄마 얼굴을 덮어버렸다. 그래서 더욱 늙어 보인다.
떠나는 내 뒷모습을 볼 수 없어 돌아설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이 주어서 소진되고 탈진되었음에도. 이렇게 몸과 마음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다 내어 주었음에도.
자식은 죽었다 깨나도 모른다. 내 자식이 나를 모른 듯 나 또한 우리 엄마의 숨은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지 못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3월이 시작되는 오늘. 비가 내린다. 제법 많은 봄비가 내린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오늘도 짐가방을 들어야 할지, 내려놔야 할지 흔들리는 눈빛으로 비를 바라본다.
엄마는 내가 머물던 이 공간에서 더 굽은 허리로 허전함과 쓸쓸함을 마주하고 서 계시겠지.
-엄마, 엄마는 존재한다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나에겐 특효약이에요. 감사하고 사랑해요.
비가 그치면 봄꽃 한 송이 우리 엄마 가슴에 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