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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 Feb 02. 2021

식사하세요



- 식사하세요.

- 먹고 왔어.

- 조금만 드셔 보세요. 오늘은 찰밥 했어요.

- 그래? 그럼 조금 먹어 볼까?







친정 엄마가 하는 일이 있다. 벌써 10여 년 넘게 매일 하는 일. 

75세 이상 되는 노인분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것도 집에서.

방 하나를 아주 노인정처럼 내놓았다. 그곳에서 화투도 치고, 자식 얘기도 하고, 밥도 드시고.

오전 11시경에 오셔서 오후 6시면 모두 칼퇴근을 한다. 주로 70대, 80대 중반이다.


17살에 시집와서 37살에 과부가 되어 5남매를 키우느라 안 해 본 일 없다는 키 작은 수복 할머니.

아직 결혼하지 않은 50대 후반의 두 아들을 징글징글하게 뒷바라지하고 있다는 미미 할머니.

남편이 치과 원장이었다는 할머니는 돈 많은 부자여도 먹을 것  한 번 사 오는 법이 없어 구두쇠로 통하는 멋쟁이 할머니. 가끔씩 잡채, 김치찌개를 해 와서 음식 솜씨를 뽐내는 범이 할머니.

1시간을 전철 타고 오면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태릉 할머니. 무릎 수술하고 지팡이 짚고 오는 숙이 할머니. 예전에 미용실을 운영해서 공짜로 염색해주고 머리를 잘라주는 수다쟁이 할머니 등 코로나 이전에는 15명 정도 오셨지만 지금은 그 숫자가 확 줄었다. 두 세 분이 와도 엄마의 손은 분주하다.


 각각의 사연을 품고 출근해서 오래 전의 묵은 이야기에서 따끈따끈한 이야기까지, 한 얘기 또 하고 또 해도 모두들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고생했네" 토닥토닥 위로하고 격려하는 감동의 현장. 그러다

고스톱 치면서 백 원에 언성이 높아지고, 시끌시끌해지는 시장통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때 슬쩍 친정엄마가 나서서 중재를 한다. 돈을 잃은 할머니들을 (많이 잃으면 이 천 원에서 적게 잃으면 오백 원 정도이다) 한 분 한 분 불러내어 얼마를 잃었냐, 오늘은 왜 안 될까 속상한 마음을 만져주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잃은 만큼 손에 쥐어 준다. 그제야 민망한 웃음들을 보이며 시장통이 다시 평온해진다. 

 엄마 자신도 팔순이 넘은 노인이다. 이제는 허리 협착증 때문에 오래 서 있는 것도, 걷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도 매일 점심 준비를 한다. 어느 때는 흰밥, 어느 때는 콩밥, 어느 때는 보리밥,  어느 때는 찰밥을 지으며 그때 그때마다 반찬과 찌개, 국을 달리한다. 가족이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도 힘든 나이인데, 그분들의 식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준비하고 대접한다. 넓은 복대를 허리에 두르고 일하는 것을 보면 속상하다.  딸들은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어르고 달래고 호소도 해보지만 엄마는 요지부동이다. 

- 노인들이 하루 종일 우두커니 집에만 있어 봐. 얼마나 무료하고 빨리 늙는 줄 아니? 누워 있다 보면 아픈 곳도 더 많이 생겨. 게다가 혼자서 식사하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 일인데, 너희들은 잘 모를 거야. 저분들은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유일한 낙이야.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엄마 하는 일에 왈가왈부 안 했으면 좋겠어.

 

독거노인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어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노인들뿐이랴. 젊은 세대들도 혼자 살며 혼밥 하고 혼술 한다. 하지만 노인들의 혼밥과 혼술은 젊은 사람들과 다르다. 젊은 세대는 문화로 자리 잡으며 그 분위기와 기분을 즐긴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따로 그러나 같이'라는 문화를 공유한다. 그러나 노인들은 혼자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도 즐기지도 않는다. 단지 함께 먹을 사람이 없어서 한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배고픔을 때우는 행위일 뿐이다.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던 그때를 더 그리워하고, 누군가 함께 먹을 수만 있다면 외롭거나 쓸쓸하다는 감정 따위에 눈물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함께 식사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위로고, 안정이고 살아가는 힘인지 노인들의 정서를 대표해서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세 딸이 결혼하기 전 친정집은 복닥복닥 사람 사는 집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 둘 결혼해서 친정집을 떠나면서 빈둥우리처럼 고요하고 적막했고, 부모님은 자주 찾아오지도 않는 딸들의 복을 빌며 차가운 밥 한 덩이로 세월을 이기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늙음'의 그 자리에 손으로 막고 몸으로 밀어내도 외로움과 쓸쓸함, 고독함이 썰물처럼 들이치는 걸 어찌하겠는가? 따끈하게 갓 지은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노년의 시린 바람 정도는 막지 않겠는가?


- 어서 식사들 하세요~


딸들이 떠난 빈둥우리 집에 엄마는 다른 가족들을 모시고, 오늘도 '늙음'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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