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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생 Aug 28. 2020

최고의 8분, 질문을 던지다

[음악에세이#06]레드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1990년대 고등학교 교실과 학원가의 익숙한 풍경 중 하나는 수업시간에 몰래 이어폰을 꽂은 채 노래를 듣는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음악팬을 자처하는 학생들의 열띤 토론이 쉬는 시간 내내 어졌고, 다음 수업시간까지도 속닥이며 이어가다 선생님께 혼이 나기 일쑤였다.


  나 역시도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평가하고 다투는 것이 그 시절의 중요한 하루 일과였는데, 주로 듣던 음악 장르는 (Rock)이었다. 그리고  시절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곡은 레드제플린(LED ZEPPLIN)의 「Stairway To Heaven」이었다.



  당시 음악을 좀 안다하던 친구들 사이에는 일종의 계급적 성격이 존재했다. 특히 록 음악즐겨 듣는 부류들은 대체 누가 부여했는지 알 수 없는 우월적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대체적으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선호하는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가끔 헛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들과의 교류가 너무 즐거워 감히 내색하지 못한 채 무리에 동참할 뿐이었다. 심지어 마치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샤우팅을 했을 것만 같은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어떤 POP 음악의 기타 리프에 반해 록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마이클 잭슨의 Beat It에 나오던 Van Halen의 기타 솔로 때문에 록 음악에 빠졌다는 말을, 그들 앞에선 감히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소롭기 그지없는 무리이긴 했지만, 우리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꿈과 희망을 노래하기도 전에 물질과 성공을 위한 무한경쟁을 강요받는 현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암기능력으로 서열을 매기고 삶의 끝자락까지 그 번호표를 들고 가라는 사회, 그리고 “반짝이는 걸 모두 금이라고 믿으며 천국을 사려”는 이들에 대한 실망. 이를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이 사회 어디를 둘러봐도 결국  음악뿐이지 않냐는 거다. 고만고만한 댄스 음악에 어깨를 들썩이는 친구들이 그렇게나 속없어 보였던 건 그 때문이었다. 그땐, 그랬다.


  록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들 간에도 세부 장르에 따른 기호는 달랐다. 우리는 하드록, 스래쉬 메탈, 펑크와 얼터너티브, 프로그레시브 등 연대와 장르에 따라 어떤 밴드가 최고인지, 어떤 앨범이 훌륭한지 늘 치열하게 토론하곤 했다. 하지만 어떤 기호를 가진 이든 ‘최고’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몇몇 밴드들이 존재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밴드가 레드제플린(LED ZEPPLIN)이었다.


  특히 Led Zepplin4 혹은 Untitled Fourth Album로 불리는 그들의 4집 앨범은 그 어떤 록 음악 팬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Led Zepplin4는 그들을 상징하는 하드록 베이스에 오컬트와 3세계 음악 등 멤버들의 취향이 고루 어우러진, 창조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사운드로 가득 찬 세기의 명반이었다.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절대적 수작이며 수록된 모든 곡이 명곡인 이 앨범에서, 굳이 최고의 곡을 꼽자면 역시나 「Stairway To Heaven」이다. 한 편의 장엄한 클래식 공연을 본 듯 극적 감동마저 불러일으키는 곡 구성, 마치 태초부터 한 곡으로 창조된 양 완벽함을 뽐내는 연주와 사운드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생(生)에 대한 성찰을 추동하는 시적인 노랫말까지. 「Stairway To Heaven」 '최고'라는 수식이 가장 잘 어울리는  넘버였다.


"Led Zepplin이 발표한 모든 앨범이 명반"이라지만, 그 중 최고는 누가 뭐라해도 4집이다. 그들의 6집이 잠시나마 선택을 머뭇거리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열일곱의 나는 「Stairway To Heaven」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듣곤 했다. 이 곡이 담긴 음반은 내 손이 닿는 어딘가에 늘 있어야 했고, 내가 듣고 싶을 땐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LP가 있음에도 카세트테이프를 따로 사서 듣고,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자 같은 앨범의 CD를 구입해 듣고 또 들었다. 혹시라도 LP에 스크래치가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어린 고교생의 치기 어린 집착으로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내겐  사소한 추억쯤으로 치부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이유는, 이 노래를 통해 비로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실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록 설익고 어설픈 시절이었지만, 이 시기는 내 삶의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였다. 나는 이 노래를 접하고 나서야 '삶'이란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삶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 “반짝이는 걸 모두 금이라고 믿으며 천국을 사려”는 이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Stairway To Heaven」은 내게 그런 곡이었다. 최고의 8분을 선사함과 동시에 늘 질문을 던지는.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추천 Playlist

- Stairway To Heaven

- & All 

(감히 이 리스트에서 단 한곡도 빼놓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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