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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생 Jul 30. 2020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

[음악에세이#05]빌리 홀리데이의 「Strange Fruit」





“I can’t breath…….”


조지 플로이드는 여러 차례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데릭 쇼빈은 무려 9분이나 그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러 죽음에 이르게 했다. 억울한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의 계속되는 시위와 이어지는 유혈 폭동.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이 플롯에서 낯섦보다 익숙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검은 피부를 지닌 이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를 가졌다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는 뮤래토(Mulatto)이자 흑인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외가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10대 시절에는 두 번이나 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참혹한 유년기를 보냈다. 돈을 벌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야 했던 그녀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선택지는 창녀가 되는 것뿐. 불쌍한 흑인 소녀의 삶은 점점 더 망가져 갔다.


  삶의 의지를 잃어가던 그녀에게 찾아온 희망은 나이트클럽에서 한 곡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로부터 비롯되었다. 나이트클럽에 무용수로 지원했다 떨어진 그녀에게 피아노 연주자가 노래를 한 곡 불러보라고 권한 것이다. 그녀는 연주에 맞춰 「Trav`lin All Alone」이라는 곡을 부르기 시작했고, 그녀가 노래를 부르자 나이트클럽은 적막에 휩싸였다. 그녀의 음색은 그야말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적요해질 만큼 충격적이었고, 관객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감격의 눈물과 박수로 화답했다. 재즈 역사에 길이 남을, 가장 위대한 여성 보컬리스트 중의 한 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부산 서면의 한 대형음반매장이 문을 닫기 위해 CD를 처분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없이 달려가 찾아낸 그녀의 전집앨범. 고가의 가격에 군침만 흘리다 반값에 손에 넣은 기분이란.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려요 /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 남부의 따뜻한 산들바람에 검은 시신들이 흔들려요 / 포플러 나무에 이상한 열매가 달려 있어요

멋진 남부의 전원 풍경 / 튀어나온 눈과 찌그러진 입술 / 달콤하고 상쾌한 매그놀리아 향 / 그러고는 갑자기 풍겨오는 / 살덩이를 태우는 냄새

여기 까마귀들이 뜯어먹고 / 비를 모으며 바람을 빨아들이는 / 그리고 햇살에 썩어가고 나무에서 떨어질 / 여기 이상하고 슬픈 열매가 있어요.


  TV로 죽어가는 플로이드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다 문득 기시감을 느낀 것은,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Strange Fruit」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백인들의 린치 속에 교수당한 흑인들의 시체가 매달린 나무를 보고 충격을 받아 만든 아벨 미어로폴의 <Bitter Fruit>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를 가진 그녀가 만나 1939년 탄생한 노래다. 이 흑인을 위한 장송곡은 일부 백인들의 반발과 미디어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의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냈고, 먼 훗날 『TIME』지가 20세기 최고의 곡으로 선정할 만큼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명곡이다.


  아마도 그녀는 이 노래를 부르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을 향할 세상의 위협과 비난에 직면할 것을 뻔히 알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흑인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말 큰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살아왔던 모진 삶을 살지 않길 바라면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하지만 그녀에게 미안하게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진보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정작 인류의 내면은 진보하지 못했다. 「Strange Fruit」이 세상에 처음 울려 퍼진 지 80여 년. 고작 시속 4,000마일로 하늘을 날던 우리는 이제 시속 18,000마일의 속도로 우주를 향할만큼 진보적인 문명을 구축한 종족이지만, 여전히 피부색과 젠더, 부와 계급으로 주홍글씨를 새기고 차별하며 혐오하길 서슴지 않는다.


  인류의 영혼과 정신은 여전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의 내면은 진보하지 못했다.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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