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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생 Aug 18. 2020

90년대의 여름을 함께 한 디바들을 추억하며

[음악에세이#07]앨라니스 모리셋의 <Jagged Little Pill>



  뉴트로, 걸 크러쉬 그리고 1990년대. 요즘 대중문화의 양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한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자연스레 나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돌아오는 몇 번의 여름을 맞으면서도 끝나지 않던 사춘기와 소소한 일탈, 철없던 연애담과 술로 지새던 여름  기억들.


  하지만 내 기억의 앨범 속에 가장 많은 추억을 남긴 것은 역시 그 시절을 함께한 음악가들과 앨범들이. 특히 90년대의 여름은 내 생에 가장 많은 여성 아티스트의 작품을 함께한 시기이자 계절이었다.



  여성이 대중음악계의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아티스트는 마돈나였다. ‘Queen of POP’이라는 호칭은  오직 그녀에게만 허락된 영예였고, 그녀가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도 감히 누구하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특히 젠더적 관점에서 본다면, 대중음악의 역사는 그녀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5년 「Like a Virgin」을 통해 마돈나 스스로가 대중음악계의 중심이 되었음을 선언한 이후에야, 수 많은 여성 뮤지션들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에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과 같은 세기의 디바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수 있었1990년대. 로린 힐과 TLC는 짧지만 강렬했고, 마돈나와 자넷 잭슨의 퍼포먼스는 여전했다. 크랜베리스, 셰릴 크로, 커트니 러브, 릴리스 페어, 사라 맥라클란, 쥬얼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은 대중음악의 황금기이면서 여성 아티스트들의 전성기 이기도 했다.

  앨라니스 모리셋 또한 그들과 함께 빛났던 90년대 최고의 여성 록커였다.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마돈나에 빚을 지고 있지만, 앨라니스 모리셋은 마돈나와의 인연이 조금 더 특별하다. 그녀는 원래 자신의 모국인 캐나다에서 댄스 팝 가수로 활동한 바 있는데, 그런 그녀가 월드 와이드 데뷔를 앞두고 계약한 곳이 다름 아닌 마돈나의 회사 Maverick Records이었다. 댄스 가수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데려오지는 않았을 텐데, 정작 그녀의 데뷔 앨범 <Jagged Little Pill>이 얼터너티브 계열의 록 음반인 것은 그녀의 대표곡처럼 참 「Ironic」한 일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마이클 잭슨, 밴 헤일런, 안드레아 보첼리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작업해온 글렌 발라드의 능력 덕분이다. 위 이름들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장르와 상관없이 아티스트의 특징과 장점이 음악과 융화되도록 하는 데 있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음악가다.


<Jagged Little Pill>앨범은 이후에도 여러차례 재발매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수록된 곡들은 장르와 상관없이 많은 후배 싱어송라이터들에 의해 불려졌다.


  물론 그녀가 마돈나의 회사와 계약하고, 훌륭한 프로듀서 중 한 명을 만난 행운 덕분에 ‘최고’가 된 것만은 아니다. You Oughta Know」와 같은 당당하고 솔직한 가사에 더해진 특유의 목소리와 창법 등, 그녀의 특별한 재능과 실력이야말로 얼터너티브 록을 팝적으로 해석하는 난해한 실험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Jagged Little Pill> 앨범을 더욱 높이 평가하고 아끼는 것은, 그녀 이후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앨범으로서 이 정도의 수작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 몇 자를 끄적이며 그녀의 노래를 듣다 보면, 90년대의 여름을 함께하던 여성 아티스트들이  더욱 그리워지곤 한다. 오늘날 사운드 기술이 발전하고 음악 시장 규모가 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멜로디와 스토리가 살아있는 긴 곡을 자신만의 창법으로 열창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쉬이 볼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대중음악은 엄청난 팽창을 거듭했다. 하지만 오늘날 대중음악의 질, 특히 국내 대중음악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한 것이 아닌가 싶다.


  미디로 찍어낸 고만고만한 멜로디에 덕지덕지 발라댄 신디사이저의 기괴한 굉음이 빚어낸 자기복제가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시대. 나는 그립다. 지워지는 화장 따위에 아랑곳 않고 땀에 흠뻑젖은 채로 자신의 노래를 열창하던, 상품이 아닌 여성 아티스트들뜨겁던  여름 무대가 너무나 그립다.


# 추천 Playlist

- Ironic

- You Oughta Know

- You Learn

- Hand in my Po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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