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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생 Oct 16. 2020

인류를 향해 던진 롤링스톤의 메시지

[음악에세이#09]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



 롤링스톤은 반세기의 역사를 지닌 음악 전문지이자 대중문화잡지로, 전 세계 음악팬들에겐 애증의 대상이다. 음악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업고 최고의 권위를 지닌 음악 전문 매체가 되기는 지만, 동시에 1960~70년대 로큰롤 및 백인 남성 아티스트에 대한 편애와 1980년대 이후 대중 연예지로의 변질 등으로 많은 비판도 함께 받았.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링스톤이 대중음악의 위상을 높이고 영향력을 확장시키는데 큰 공헌을 해왔다는 사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 지난 2003년부터 발표해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과 같은 순위가 여전히 현대 대중음악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인정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20년 9월 22일, 미국의 저명한 음악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을 8년 만에 업데이트했다. 발표 결과는 꽤 흥미로웠다. R&B와 힙합은 약진했고, 팝 메탈과 재즈는 몰락했다. 롤링스톤이 사랑했던 고전 록(Rock) 음반들의 순위는 급전직하했고, 인종과 젠더의 차별을 탈피하려는 의지는 전례 없이 뚜렷했다. 특히 이번 발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1위 자리의 주인이 더 이상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나는 롤링스톤이 발표한 2003년 초판과 2012년 개정판의 순위 발표를 전후로, 기대를 갖거나 감흥을 느낀 기억이 없다. 굳이 들춰보지 않더라도 1위는 ‘당연히’ 비틀스의 차지여야 했고, ‘캡틴 아메리카’ 비치 보이스는 여전히 과대평가받을 것이며, 나머지는 결국  음악을 하는 백인 남성들로 도배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보수적인 롤링스톤의 성향을 감안할 때, 그들의 첫 선택이 족히 100년은 갈 것이라 여겼다.


  비치 보이스에 대한 롤링스톤의 과대평가가 여전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2020년에 발표된 개정판의 결과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롤링 스톤은 그간 평가절하했던 흑인과 여성 음악을 제대로 평가하기 시작했고, 팬들조차 외면하는  앨범들은 과감하게  치워버렸다. 특히 2020년 내내 이슈가 되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와 다양성 존중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감안하더라도, 롤링스톤이 마빈 게이(Marvin Gaye)의 <What’s going on>을 1위로 꼽은 것은 정말 의외였다.


이 다음 앨범에서 보여준 그의 섹시 어필을 생각하면, 이 음반의 가치가 더욱 크게 다가오기도...


  물론 마빈 게이는 음악을 평가하는 어떤 순위에서건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특유의 소울 창법으로 유명한 그는 스티비 원더와 함께 소울의 대부로 불릴 만큼 빼어난 음악성을 지닌 아티스트다. 그런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What’s going on> 앨범은 현대음악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흑인 최초의 콘셉트 앨범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작품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이 앨범은 월남전과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와 그 속에서 더욱 참담하게 살아야 했던 흑인의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 앨범을 통해 사랑을 노래하며 달콤한 성공을 맛본 그에게, 이 앨범이 얼마나 큰 모험이었을지 가늠하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What’s going on>앨범은 대중의 반응을 걱정한 소속 음반사 모타운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인류와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음악으로 뱉어낸 마빈 게이의 일갈이었다.


  나는 롤링스톤이 이번 순위 발표를 통해 세상을 향한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여성 아티스트들의 순위 상승과 "이 앨범 이후, 다른 흑인 뮤지션들은 그들의 예술에 대한 음악적, 정치적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자유를 느꼈다"롤링스톤의 1위 선정에 대한 변은, 내게 시대의 변화를 체감케 함과 동시에 짜릿한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했다. 그들이 여성 아티스트들을 재평가하고 흑인 인권을 노래한 소울 뮤지션의 앨범을 1위로 꼽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백인 중심적이며 남성 주의적이었던 인류의 오랜 세계관이 더 이상 작동해선 안 된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위를 접한 후, 오랜만에 그의 앨범을 꺼내 음악을 들었다. 지금껏 그가 ‘최고’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건만, 어쩌면 그에게  잘 어울리는 수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잃을지 모를 위험과 사회의 냉소적인 시선에도 자신의 목소리로 인류와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전한 그 라면,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강렬하게 자신만의 음색과 그루브로 ‘노래를 가지고 노는’ 마빈 게이 라면. ‘최고’라는 수식을 기꺼이 부여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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