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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생 Apr 30. 2020

순수와 본질로의 회귀, 마침내 위대한 여정을 끝맺다

[음악에세이#03]너바나(Nirvana)의 <In Utero>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1994년 4월의 어느 날, MTV를 통해 커트 코베인을 처음 알게 됐다. MTV는 4월 내내 그의 죽음을 기리며「Smells Like Teen Spirit」 뮤직비디오를 내보냈고,  자연스럽게 그와 그의 밴드가 연주하는 곡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 후 시간이 갈수록 내 머릿속은 점점 그를 알아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야말로 그와 ‘Nirvana’로 점철된 청소년기를 보냈다.


  훗날 내 삶의 스승이 된 그를 만났던 1994년의 4월이 불혹에 이른 지금까지 또렷한 기억으로 남은 건 그래서다. 나는 그의 삶과 음악을 통해, “무엇을 위해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자 디스코, 펑키(Funky) 등이 주류를 이뤘던 팝 음악은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채 빌보드 차트를 지배하는 괴물이 되었고, 메탈리카 시대가 저물어가던 Rock 신(Scene)은 소위 LA 메탈이라 명명된 서정적인 록 발라드를 구사하는 유사 메탈 그룹과 글램 록밴드의 득세로 본연의 실체를 잊은 채 타락했다. 이젠 그 누구도 음악을 통해 ‘사회적 모순과 불합리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것만 같았던 그때, Nirvana가 혜성처럼 등장한다.   


  철학적이고 은유적인 가사와 스크래치로 무장한 보컬, 단조롭기 그지없는 코드 위에 얹어진 헤비한 사운드로 완성된 Nirvana의 ‘Grunge’는 등장과 함께 90년대를 새로이 열어갈 대안(Alternative Rock)으로 인정받는다. 또한 밴드의 리더 Kurt Cobain은 음악을 통해 자본의 논리 아래 계급화되어가는 사회와 교육의 불합리, 가정 붕괴로 인한 불안 등 ‘X세대’의 절망을 대변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1991년 1월, 그들의 음반 <Nevermind>가 거대 음악 자본의 정점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MJ의 <Dangerous>를 밀어내고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등극한 역사적 사건은  Rock 신의 마지막 레지스탕스가 팝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전복시킨, 혁명적인 사건으로 회자된다.


  하지만 만약 그들의 앨범 중 단 하나의 앨범을 선택해야한다면,  내 선택은 X세대의 영원한 송가 「Smells Like Teen Spirit」이 수록된 <Nevermind>가 아닌 <In Utero>다.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음반은 <Nevermind>일지 모르지만, <In Utero>야 말로 Kurt Cobain이 추구했던 궁극의 음악성을 담고자 했던 음반이기 때문이다.


Nirvana의 <In Utero> . 이 앨범은 그의 음악성을 온전히 담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투쟁했던 작품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Nevermind>는 커트 코베인에게 물질적 성공과 더불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함께 안긴 앨범이기도 하다. 그는 미디어의 먹잇감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소비재가 되기를 원한 적도 없었지만 <Nevermind>의 성공은 이를 강요했다. 그가 어린 시절 꿈꾸던 록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나, 결코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싶한적은 없었. 그러나 러한 사회적 강요 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갔고, 그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그를 괴롭혔다.


  미디어와 대중의 과도한 관심도 문제였지만,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자신이 원하던 음악을 하지 못하게 된 환경이었다. 그는 비록 세련되지 않고 다수 대중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직 는 그대로의 자신을 진정성 있게 표현할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속한 곳은 DGC라는 메이저 레이블이었고, 이는 곧 Nirvana가 자신들의 뜻과 상관없이 ‘대중성 있는 마스터링’을 거쳐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그들과 작업한 <Nevermind>는 Nirvana를 록스타로 만들어주긴 했지만, 커트 코베인은 <Nevermind>의 ‘잘 빠진’ 사운드가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더욱 펑크(Punk)다운, 인디 시절의 ‘날 것’과 은 사운드였기 때문이다.  녹음실에 수십대의 마이크를 악기 주변에 설치하는 등 시끄러운 펑크공연장의 사운드를 구현해  <In Utero>  앨범을 완성하고자 했지만, DGC는 그런 그의 노력을 무시하며 그와 대립했다. 그는 팔리는 음반을 위한 프로듀싱을 거부하며 협하지 않았고, DGC는 그에 음반 발매 거부와 프로듀서의 일방적인 해고로 맞섰다. 그리고 이는 훗날 그를 안타까운 죽음에 이르게 할 마약에 더욱 빠져드는 계기가 됐다.



Nivana의 앨범들. 커트코베인은 나의 10대를 지배했던 아이돌이자 아티스트였고,  이CD들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들이기도 하다.


  그는 미디어의 조명, 물질적 성공, 평단의 찬사, 대중의 사랑 등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음악의 가치’ 위에 두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 세련된 사운드와 정제된 언어로 원하지 않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그에게 ‘음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성공의 달콤함에 안주하기보다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것을 열정적으로 찾던 그때로 돌아가고자 했고, 그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끝없이 고뇌하고 투쟁하는 여정을 선택했다. <In Utero>는 그 지난한 여정의 종착역과도 같은 앨범이다. (타협점을 찾아 최종 마스터링을 거쳤고, 그는 이 앨범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사운드에 가장 근접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가 남긴 이 말은, 내게 있어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다.


  그를 과거 어느 시점의 아이콘 혹은 나의 사춘기를 지배했던 아이돌로서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삶의 진정한 스승으로 받아들인 이유도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In Utero>를 완성하기 위한 그의 결단과 열정은, 내게 있어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 언젠가 커트 코베인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누군가가 되어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미움 받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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