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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생 Apr 27. 2020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음악에세이#01-Prologue]어머니와 음악 그리고 행복


  2020년 2월, 당시 근무 중인 회사에서 제작하문화예술정보지에 ‘음악’을 주제로 매월 경수필 한 편씩을 기고하게 됐다. 1월 초에 있었던 계약연장을 위한 자리에서 담당자분이 원하는 콘텐츠의 설명을 듣다보니, 내가 글을 쓰기위해 모으던 글감들과 결이 같았다. 나는 얼떨결에 "이런 걸 말씀하시는거냐"며 사진과 글 몇 꼭지를 보여드리게 됐고, 결국 이 글감들을 온전한 수필 형태로 완성해 매월 한 편씩의 글을 잡지에 수록하기로 결정했다.


  제작회의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큰 후회가 밀려왔다. 문학지 두어 권에 몇 편의 글을 실었던 것을 제외하면 다른 종류의 매체에는 기고를 해본 적도 없거니와, 정기적인 기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회의 참관 차 들렀을 뿐인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이 벌어진 것이. 사실 내가 하고 있는 다른 회사 업무나 학교 강의를 생각하면 고단하고 귀찮을 법한 일이었다. ‘내가 왜 경솔하게 불쑥 제안했을까? 시키지도 않은걸 왜 내가 먼저 하겠다고 했을까?’ 그냥 생각해보겠노라 얼버무리고 우리 에디터들에게 코너 하나 기획하라고 했으면 될 일이었건만,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그 후로도 며칠이나 후회를 거듭하며 내 심리를 파헤친 끝에 두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먼저 등단 후 평균 1년에 한 편을 채 문학지에 수록하지 못한, 게으른 내 천성에 경고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회사일과 강의를 핑계로 글을 쓰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마감일이 정해진 글쓰기를 강제해서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기를, 평생 글을 쓰며 살아가길 바랐던 내 청춘의 다짐을 잃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박약한 의지에 책임감과 강제성을 억지로 부여해서라도 글을 쓰게 해야겠다는, 스스로를 위한 못난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내 어머니 때문이었다. 여느 어머니가 그렇듯 내 어머니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멀찍이 선 다른 이의 눈에는 꽤 살만한 집에 시집 온, 열심히 일하는 착한 며느리쯤이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자식 둘을 홀로 키우시다시피 하며 주 7일 하루 최소 16시간 이상의 가게 일과 시집살이를 병행한 현대판 ‘노예’였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명절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기쁨을 빼고 나면, 가게에 어머니와 함께 앉아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 날일 뿐이었다. 명절 중의 단 하루를 아침 10시에 외가댁에 도착해 오후 5시가 넘지 않은 시간까지 가게 밖에 있을 수 있었는데, 5시가 되면 다시 가게 문을 열고 엄마와 나란히 가게를 지켜야 했다. 어머니는 반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내가 음악을 사랑하게 한 나의 메시아(언젠가는 또 다른 글로 다룰)가 전해 준,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내 LP들.


  ‘훗날 네게 남겨주겠다'는 기약 없는 할머니의 말 한마디를 담보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내 어머니의 유일한 기쁨은 주로 일본인을 상대했던 민예사(도자기, 골동품 및 관광 잡화를 파는 가게)에서 일하며 받은 팁을 모아 나를 위해 쓰는 것이었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내게 워크맨과 CD플레이어를 사주고, 돈가스를 사 먹이고, 몰래 용돈을 쥐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그녀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돈을 받아 사 모은 음반들은, 그래서 내게 그저 내 사춘기와 함께한 한 조각 추억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음반들은 내가 그것들을 즐기며 기뻐하는 모습만이 유일한 행복이었던, 내 어머니의 '청춘의 유품'과도 같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일을 선뜻 제안했던 이유는 필시 그 때문이었다. 내 어머니가 살아온 삶에서 ‘행복’이라는 개념이 실재하던 순간은 대부분 나로 인한 것들이었으니, 그 일을 함으로 인해 또 한번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지 않을 생각했던 것이다.


이 음반들은 내게 '어머니의 청춘이 남긴 유품'과도 같다.


  내가 쓴 음악 이야기를 읽는 순간을 그녀가 좋아할 것 같아서. 당신이 몰래 쥐어준 돈으로 판이 닳을 때까지 들으며 느꼈던 행복을, 지면 어딘가에 옮겨 남겨놓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아서. 그 글들을 보며 당신이 내게 베푼 사랑이 헛되지 않았노라 기뻐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음악이라는, 내가 세상을 내다보는 창을 열어준 당신께 감사하고 싶어서.


  내가 기고하는 글의 수준과 내용 혹은 그녀의 기호와 이해 여부를 떠나, 아마도 그녀는 내 글을 읽으며 그저 좋아할 것이다. 분명 행복해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겠지. 아닌 척 모른 척 시니컬한 표정 뒤에 숨어 몰래 행복하겠지.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와 음악 그리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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