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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지 Nov 03. 2024

사탕 먹고 갈래?

홍삼캔디, 박하사탕


황할아버지가 자주 다리를 꼬고 앉아계셨다.

"어르신 다리 꼬고 앉으시면 허리에 안 좋아요."

거실에서는 자주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황할아버지 생활실에 가보니 척하고 긴다리를 꼬고 신문을 보고 계신다. 신문 펼쳐 다리 위에 올리고 보고 계시면 포즈가 외국 배우 빰친다.     

나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와~ 어르신, 멋있어요~"라고 반응을 했다.

"재밌는 기사 나왔어요? 저한테도 얘기해 주세요? "라고 물으니, "나는 이게 치매예방이야. "라고 대답하시면서도 멋쩍게 웃으신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신문, 책 차분히 읽기 쉽지 않은데 대단하지 않나요?

           


유할머니는 방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라고 하신다. 어르신들은 사투리를 섞어 쓰기 때문에 바로 못 알아듣고 눈치 없이 들어가서 다른 어르신과 꽁냥꽁냥 인사말을 주고받았는데 어르신은 계속 꿍시렁꿍시렁 하신다.

한참 떠들다가 유할머니 궁시렁을 알아듣고 "어머, 죄송해요."하고 얼른 도망치듯 나온다.

내가 오버하면서 "아이고. 도망가자~."하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키득키득 웃는다.          







사무실에서 종종 머리 아픈 일이 발생하면 숨 좀 돌리고 싶어서 생활실로 올라간다.

일하러 생활실에 올라가는 거면 후딱 일하고 내려와야 할 때가 많지만, 이렇게 동네 마실 마냥 돌아다니면서 생활실로 기웃거린다. 어르신이 사탕도 주시고 양갱도 주시고 한다. 홍삼캔디, 박하사탕.

실없이 마실 다니다 보면 머리가 좀 가벼워 질때쯤 사무실로 내려와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피부에 혈관이 다 비치는 약하디 약한 할머니이지만 목소리만큼은 굳은 심지가 느껴지는 김할머니.

“아이고 이쁘네...”

왜 이렇게 다들 예쁘다고 하시는지, 피부도 좋다. 귀도 예쁘다, 하다못해 “치아”까지도 예쁘다고 한다. 

나는 그 예쁘다는 말을 넙죽 넙죽 맛있게 받아먹는다.

'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성이 뭐야?.”

“김이에요.”

“어디 김?”

“네, 김해 요. 어르신은요?”

“나는 경주, 경주는 양반이지. 김해면 상놈이구만.”

'아니, 이게 무슨 김유신장군 관뚜껑 열고 나올 소리.'



어르신이 먼저 “요즘엔 이게 양반이지 뭐.”라며 손가락 두 개로 동그라미를 그리신다.

"그래도 눌리지 말고 살아. 나는 양반이어도 돈이 없어서 여기에 젊어서는 늘 눌려 살았어." 가슴을 툭툭 두드린다.

“그래도 하늘을 보면서 살았어. 그럼 되는 거야. 그렇게 살아~ 그렇게 살다 보면 돼. 하늘 보면서 살아.”


"착하게 살아 착하게. "


내 마음을 꿰뚫고 계신 분 같아서 건성으로 대답할 수가 없다.





"어르신 오늘은 뭘 적으세요?"

다른 생활실에 김할머니.


"나는 학교도 안가봤는데 교회가서 다 가르쳐줘서 따라적었어."하면서 내놓으신다.

찬송가가 공책 몇 권에 나눠 적혀있다. 어르신이 해같은 얼굴로 웃으신다. 성실함에 박수를 보낸다.


신체적으로는 약해지셨지만 어르신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감동이 될 때가 많다.

지층처럼 쌓인 삶이 너무나도 위대하게 보인다.





업무를 위해 돌아온 사무실. 주머니에 넣어주신 홍삼캔디로 당을 충전한다.

"그래, 오늘도 좋은 마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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