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를 짚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내 앞에 천천히 앉으셨다.
“오늘 보훈급여가 들어오는 날이라, 돈을 찾으러 왔습니다.”
“네, 고객님. 우선 통장 정리부터 해드릴게요.”
통장에는 ‘보훈급여금’이 입금되어 있었다.
“고객님, 입금 확인되었습니다. 얼마를 인출해 드릴까요?”
“100만 원 인출해 줘요. 이번 추석에 손주들 오면 용돈도 줘야 하고, 쓸 데가 많으니까. 손주들 용돈 안 주면 오지도 않아요.”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네~ 신분증 주시면 지급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지갑에서 꺼내 주신 신분증은 ‘국가유공자증’이었다.
그 증서를 볼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당신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분은 오랜 세월을 불편한 몸으로 견뎌오셨을 것이다.
내가 유공자증을 한참 바라보자,
“내가 전방 GP에서 근무할 때, 다친 부하를 업고 나오다가 지뢰를 밟았어요. 그때는 죽는 줄 알았지요. 절뚝거리긴 하지만 혼자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오래전 그날을 담담히 이야기하셨지만, 그분의 마음을 내가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나는 명함을 건네며, 앞으로 오실 때 나를 찾아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만나서 반가웠어요.” 하시며, 한참 어린 나에게도 예의를 갖춰 모자를 벗고 인사하셨다.
고단한 세월이 묻어나면서도 인자한 인상의 그 고객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