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소설
“인류를 멸망시킬 방법? 그게 이번 주제라고?”
“그래. 방금 공지사항에 올라왔어. 2주 후 월요일 수업 전까지 제출 하래.”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글쓰기’ 과목의 과제에 대해서 친구가 말했다. 모든 대학교에서 과에 상관없이 필수적으로 듣는 공통과목 중 하나다. 특정 주제에 대한 짧은 글을 쓴 후 발표를 하고, 글에 대한 첨삭을 받는 수업이다. 그런데 이번 주제는 좀 특이하다.
“주제가 뭐 그따위지? 인류를 멸망시킬 방법? 지구를 이롭게 하거나 사람을 살리는 방법이 아니라?”
“그러게. 이런 방면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네. 뭐 핵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고 원리는 알지만 기술이나 경험은 없으니 쉽지는 않겠지.”
친구는 대답하고는 덧붙였다.
“핵을 만드는 것보다는 핵보유국에 잠입하거나 고위 관리직에 접근하는 게 더 쉽겠네.”
“그건 그럴 수 있겠네. 어쨌든 무슨 방법을 사용하던지 일단 돈이 엄청 많아야 되지 않을까? 작은 나라 정도의 자금력은 있어야 망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그렇겠지. 그런데 왜 이런 주제의 과제를 내준 걸까? 창의적인 답을 찾아오라는 뜻인가?”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에 대해 생각했다. 지난번의 글쓰기 주제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무엇인가?’였다. 나는 치매에 대해 글을 썼고, 다른 몇몇은 암에 대해, 또 다른 학생들은 뇌혈관질환을 선택하고 글을 썼다. 어떤 질병을 고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치매를 골랐다면, 그 이유에 대해 서론, 본론, 결론을 작성하는 것, 그리고 알맞은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논리적인 글쓰기를 하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이다. 글쓰기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묘사를 잘한다거나 하는 수업은 아니다.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독특한 해답을 찾거나 글을 꾸미지 말고 과학적으로 글 쓰는 게 중요하다고 했잖아. 하던 대로 논리적인 글쓰기를 하면 되겠지.”
나는 이렇게 말한 뒤 덧붙였다.
“이런 특이한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논리적으로 쓰는지를 보려고 했나 봐. 그게 아니면 이런 주제를 선택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겠지? 어떤 방법을 제시하는 것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인류를 망하게 한다는 결과까지 가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쉽지 않을 거야. 저번 주제처럼 여러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지를 만들어야 하니까.”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 영수와 글쓰기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방에서 짐을 풀며 방금 했던 대화를 생각해보니 참으로 괴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망하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학생 두 명이라니. 여기가 무슨 빌런 양성소도 아니고.
그리고 열흘이 지난 목요일 밤. 다음 주 월요일 아침까지 과제를 온라인으로 제출해야 한다. 슬슬 글을 써야 한다. 무슨 방법이 좋을까. 무슨 방법으로 인류를 망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운석 충돌과 같은 인간의 힘을 벗어난 경우는 제외하고 생각해보자.
핵?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파괴적인 무기다. 하지만 핵은 실제로 무기로 사용된 적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많은 방책들이 존재한다. 또한 핵으로 인류를 파괴하려면 한 방으로는 부족하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많은 핵들이 동시다발로 이곳저곳에 뿌려져야 한다. 단순히 핵 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며 핵을 열쇠로 해서 강대국 간의 분쟁을 일으키고 핵전쟁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핵으로 인류를 멸망시키기는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국에 존재하는 핵에 대한 방책을 뚫거나 고위 정치인에게 접근해야 하는데, 논리적으로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핵폭탄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 곳은 안전장치가 탄탄하고 접근도 어렵다.
전쟁은 어떨까. 아프리카와 중동 등 많은 지역은 실질적인 전쟁 위협에 처해있다. 종교전쟁을 하는 나라, 독재자와 반군이 싸우는 나라, 분단된 지역 등등. 그런 나라들을 중재해서 싸움을 멈추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더 싸우도록 부추기는 것은 그에 비해 훨씬 쉬울 것이다. 거기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가 없다면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매우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으로는 지엽적인 패망은 만들 수 있어도 전 지구적인 문제는 일으키기 어렵다. 총기로 70억이 넘는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짜 뉴스를 퍼트리기, 식량난을 일으키기, 인공 합성된 전염병을 퍼트리기 등등.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인류를 멸망시키고 지구를 파괴할 방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단기간에 제압되거나, 지역적인 혼란으로 끝날뿐이다. 어떤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서, 전 세계적인 문제를 일으켜서 결과적으로 인류를 망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 끝에, 저는 환경파괴를 택했습니다. 환경 문제는 단번에 제압되지 않고, 지역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또한 비대칭적이며 비가역적입니다. 전쟁에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상대합니다. 하지만 환경오염에서는 더럽히는 한 사람이 환경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수십 명에 상응합니다. 또한 환경을 더럽히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지만, 깨끗하게 만드는 데는 며칠, 혹은 몇 달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한 지역의 오염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칩니다.”
“현재 지구는 대단히 오염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수준의 오염조차도 인간들이 의식하지 않고 무심결에 한 행동, 환경을 오염시킬 것은 알지만 귀찮아서 한 행동, 또는 다루는 물질에 대한 무지로 인한 행동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적절한 지휘 하에 조직적으로, 철저한 과학적 이해 하에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는 명확합니다. 가뭄, 태풍, 화재의 발생률이 상승합니다. 평균 기온이 높아지고, 동식물의 다양성이 떨어져 피해에 취약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해 지구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면적을 줄입니다. 지구가 자정 작용으로 없앨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면, 효과는 더욱 커지고 연쇄적으로 일어납니다. 결과는 쉽게 예측 가능합니다. 지구는 더 이상 인류가 살 수 없는 행성이 될 것입니다. 인류의 멸망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 페이지에 지구가 터지며 사람들이 튕겨져 나가는 우스꽝스러운 일러스트와 함께, 글쓰기 수업 발표를 끝냈다. 한 학생이 물었다.
“인류는 그동안 달이나 화성, 혹은 다른 거주 가능한 행성을 찾아서 이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환경오염이라는 방법은 알겠는데 구체적인 수단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구가 더 이상 인류가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소규모의 집단만 살아남는다면 인류의 멸망이라는 목표는 성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보다 더 치밀한 성공은 현재 70억이라는 인구를 생각했을 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간 자체를 노리는 것보다는 지구를 타깃으로 했죠. 그리고 구체적인 수단은 리포트의 분량 때문에 자세히는 적지 못했습니다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분량 때문이 아니라 귀찮음과 마감기한 때문이지만.
“지금 환경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아서 의도적으로 망가뜨리면 됩니다. 바다에 오염물질을 뿌리고,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쉽게 제거 가능한 동식물을 없애거나, 숲에 불을 지르거나. 방법은 다양하죠. 산불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산불은 대부분 사람의 실수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담배꽁초나 쓰레기 등에 의해서죠. 그런 산불도 큰 재앙이 됩니다. 만약 의도적으로 산불을 내고 소방서에 가짜 신고 등으로 혼란을 준다면 어떨까요. 이처럼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는 거죠.”
리포트에도 구체적인 방법은 적지 않았다.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서술하기가 귀찮기도 했지만 어떤 방법을 선택할지 보다는 성실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데에는 기발한 방법이 필요 없다. 리포트에도 구체적인 방법보다는 성실성을 강조해서 적었다. 마침 수업종이 울렸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로 하죠.”
글쓰기 교수님이 말하고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평소라면 다음 시간 과제나 발표 평가에 대해 한 두 마디 정도는 더 하시는데. 급한 일이 있는 것인지도. 장난이 어느 정도 들어간 리포트와 발표이기에 쓴소리 한 두 마디 정도는 들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잘 넘어간 것 같다. 나 이전에 발표한 다른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에 맞는 답변을 가져왔다. 대부분 첨단기술을 활용한 기발한 방법이었다. 환경파괴를 택한 사람은 나 말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