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사회 통념상 방황이라고 부를만한 시간을 가졌다.
하고 싶은 직업은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은 많았다.
관심있었던 분야의 잡지도 발간했고, 카페 겸 바에서 바텐더와 바리스타로도 오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행도 많은 곳을 다녔고, 한 사람과의 오랜 연애도 열심히 했다.
내가 만나던 사람은 내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치와 의미에 부합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해본 사랑의 강렬한 경험은 한번 뿐이어서 그 경험이 나의 사랑의 정의의 전부였다.
우연한 기회에 알바하던 바 옆에 있는 꽃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X를 마주치고 인사를 나눴고
오고가며 안부를 묻다가 대화를 하게 되고
그렇게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게 되어 호감으로 변하고.
그렇게 천천히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어 오랫동안 일상이 되었고,
그것이 내가 정의내리는 사랑이 되었다.
그렇기에 X와 헤어졌을때 매우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취업을 해야겠다고 뜬금없이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취업을 준비한지 1년도 안되어, 그래도 내가 두 번째로 가고싶다고 생각한 직장에 무난히 취업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거기에 그 애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동아리, 아르바이트 등 많은 사회경험을 하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나와 안맞는 사람이 있다고? 새삼 놀라울 정도로 그 애는 나와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다.
그냥 1,2,3,4의 선택지 중 1과 3을 선택하는 다름이 아니라,
정과 반의 길을 걷는, 정반대를 바라보고 있는 그런 다름이었다.
그렇게 참 다른 그 애에게 호기심도 일었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서로 다른 생각에 대화가 길어지며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고, 그렇게 편한 동기가 되어갔다.
너무 달라 거슬리지만 또 편안한 사람, 그렇게만 생각했다.
날씨가 좋던 어느 봄날, 눈이 떠져서 오늘은 맛있는 아침을 먹고싶다고 생각했고,
마침 전날 밤까지 대화하던 사람이 그 애라서, 그냥 같이 먹자고 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어느 새? 어떤 시점에서? 어떤 이유로?
납득이 가지 않는 점 투성이었다.
내가 해본 사랑이란 것은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오랜 시간 서로에게 공을 들이는 안정적인 관계.
1부터 10까지 다르고 서로의 감정선도 속도도 달라 이렇게 삐걱대고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정말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애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고 단정지어 생각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얼마나 패착이었고 실수였는지, 알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의 일.
그렇게 덩달아 내 마음도 복잡해지고 불안해졌다.
많은 생각을 정리하러 예전에 일하던 바에 문득 가고 싶어졌다.
그 거리를 가니 여전히 옆에 있던 꽃집이 있었다.
그 가게를 보자마자 생각난 건 다가온 그 애의 생일.
고백은 고백이고 동기의 생일 정도는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에 그 가게에 들어섰다.
X가 일하고 있던 가게라는 걸 깜빡하고. 그리고 수현이는 여전히 거기서 일하고 있었다.
수현이를 마주하기 전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산만하던 마음이
예전과 같은 인테리어의 가게에서 수현이를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가라앉고 차분해졌다.
다시금 그 애의 고백은 여전히 사랑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수현이를 만난다면 어떨까,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가 맞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미안하게도,
수현이를 다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