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일상적인 자기 결정
통제. 무언가를 가로 막는다는 걸로 쓰이지만 통제의 다른 말은 '보호'다. '보호'는 아주 어렷을 때부터 내게 멀지 않은 단어였다. 늘 붙어다니던 친구 하나가 있었다. 장난꾸러기에 활발해서 '무대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 였다. 그런데 어렷을 때 코피를 그렇게 자주 흘렸다. 매일 놀던 친구가 놀다가 코피를 흘리는 것은 매우 일상이었기에, 코피가 흘리는 것을 치우는 것을 물론 나중에는 그 친구가 행여 코피를 쏟진 않을까 살피곤 했다. 10대에는 교회에서 한 할머니를 지극히 보살폈었다. 교회에서 할머니를 매번 모시는 것 뿐만 아니라 주중에는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와 이런 저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집안일을 해주기도 하고, 무릎이 많이 아팠던 할머니와 병원에 가기도 했다. 20대에 들어서는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친구들이 내게 상담하는 것은 '성상담'이 주로 많았다. 남자친구와 첫키스를 했는데 기분이 나빴다, 트렌스젠더인데 이걸 숨기고 연애를 시작했다, 남자친구에게 강간을 당했다, 사실 나는 성소수자다, 라는 상담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그들의 존재가 너무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나름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다 20대 후반,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에 내게 우울증이 생겼다. 나는 몇년간 나를 보호해야 했다. 어느정도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사회공포증을 극복해 나갈 때쯤 나는 가족을 보호해야 했다. 동생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나와 동새을 겪은 부모님도 굉장히 지친 상태였고 동생도 사회에 나가는 연습을 해야 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도 우리 가족도 많은 노력을 했고, 지금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보호-통제 욕구는 양가감정이다. 이는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내가 통제하면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거나 나쁜 상황을 예방할 수 있을 거라고 경험을 많이 한 경우에 생길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관리하는 책임을 스스로 떠안게 되는 행동이 나타난다. 사람을 잃을까봐 두려웠던 나는 그동안 보호-통제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이 시간들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 계기가 하나 생겼다. 더이상 지속하면 안되는 일을 인정욕구 때문에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이상 미루면 안될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가족에게 생활비를 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것들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렇게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버렸다. 놀랍게도 그것들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데는 '나'가 아닌 '그들'이 있었다. 나는 그때 분명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왜 '계속 하겠습니다.'라고 표현 했을까? 나는 그때 분명 '나 독일어 배워야 돼'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빠한테 돈 주려고'라고 표현 했을까? 자기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자기표현이 제대로 되었을 때다. 내 삶에서 차곡차곡 쌓인 보호-통제 욕구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표현을 가로막는 성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원하는 결정을 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익숙해져야 할 표현은 '거절'이다. '안 됩니다.' 라는 거절. '안 됩니다.', '더 이상은 안됩니다.' 라는 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한국 문화권은 어쩌면 나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많이 없어서, 강조되는 측면은 아닐까. '거절'에 익숙하지 않아서 두루뭉실하게 표현하는 우리 문화에서 우리는 자기 표현을 점점 잃어 가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