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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혹등고래 Oct 26. 2024

결정하기 위해선 나를 더 알아야 해

이토록 가까운 섹슈얼리티 인문학

현재는 비건은 아니지만, 여전히 의식주 영역에서 비건을 지향한다.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삶은 꽤나 번거롭다. 음식이든 상품이든 비건 표시가 있다 해도 다시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2022년 처음 독일에 방문하면서 나는 개인의 가치대로 살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몸소 경험했다. 한국에서 '이 상품 정말 맘에 든다.' 하고 보면 비건음식이거나 상품이 아닌 경우가 허다 했는데, 독일에서는 '설마 이 상품이 비건이겠어.'하는 것들까지 비건음식이거나 상품이었다. 가게에서 '정말 비건'인지 눈을 크게 뜨고 작은 성분표를 모두 읽지 않아도 되는 삶, '비건이었으면' 하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결코 소소한 것들이 아니었다. 긴장하거나 아쉬움이 없는 찰나의 순간은 내 하루를, 내 일주일을, 내 한 달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의, 식, 주가 필요하다. 그 자체가 섹슈얼리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 그동안 우리는 의, 식, 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회구조와 개개인의 의식과 같은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개개인의 삶을 고민해본 적은 거의 전무하다.


그동안 경제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인권이나 인문학적인 요소들이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5~6년 전부터 명상, 마음챙김, 내면아이 치유와 같이 인문학적인 내용을 담은 다양한 강의와 수업이 많다. 좋은 현상이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적인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성(sex)에 관한 개념이 섹슈얼리티(sexuality)로 확장 되었다는 것이 하나의 예다. 이러한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상호연관성이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는 의미이며, 사회구조 내에서 구조적인 폭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 대상에 대한 구조적인 폭력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국제적인 과제가 된 것이다.


섹슈얼리티라는 용어는 학자들 조차 뾰족하게 범위를 규정하지 못한다. 그럴만한 것이, 섹슈얼리티라는 것 자체가 '사회구조와 인간생애주기' 뜻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역동하는 다양한 사회과학적 구조와 영향 그리고 효과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한 단어로 정의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인간의 삶을 수치화, 범주화, 단계화 하는 것 처럼 단순화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섹슈얼리티는 주로 성 sex' 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있지만, 내가 생각할 때 섹슈얼리티를 실현할 수 있는 개념은 '선택'이다. 이를 어려운 말로 '결정권'이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선택하는 것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내가 사회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면,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섹슈얼리티는 낯 뜨겁거나, 민망하거나, 남사스러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섹슈얼리티가 명료하고 당당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원하는 선택들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나'를 알아야 한다. '학업-대입-취업-결혼' 이라는 사회의무 안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달리하거나, 추가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끊임 없이 선택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성공도 해보면서 내가 원하는 가치들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성(sex)에 대한 인문학적인 이해, 즉 섹슈얼리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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