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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혹등고래 Oct 26. 2024

수용, 자기결정의 시작

이토록 아름다운 내 존엄

인생을 살다보면 후회하지 않을 일보다 후회할 일이 더 많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보다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는 일이 더 비일비재하다. 내 인생이 후회 될 때, 누군가의 비판에 너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수용이며, 수용은 곧 자기결정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일에서 오는 후회와 비판은 수용할만 하다. 이상하게도 그렇다. 그 '이상함'의 뿌리는 자기존엄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존엄성은 스스로 선택하는데서 잔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도 그것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니라면 삶에서 크나 큰 공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자기존엄성이라는 세포가 결여된 수용은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면 실패했다 한들 수용할 수 있는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자기결정으로 뿌리내린 단단한 자기존엄성이 그 실패를 수용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삶에서 맞게 되는 다양한 사건과 다양한 모양의사람들을 즐길 수 있는 힘은 수용이다.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결정. 면접에 임해서 들어간 회사.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상대방에게 어떻게 반응할 지. 하나씩 선택해 나가면 된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3개월, 6개월 뒤에 올 어떤 내 삶의 모습도 수용할 수 있다. 


수용-자기결정-존엄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그야말로 일상생활 그 자체가 된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일상이 내 존엄으로 시작되고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나'라는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수용-자기결정-존엄의 가치가 언젠가부터 무거운 논의가 되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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