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인생

by 이면

흔히들 ‘신기한 인생’ 이라고들 한다. 어떻게 흘러갈지 도무지 감이 잡히진 않지만 항상 이어지는 경로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교수님과 약속한 일요일 오후 시간에 접속대기 화면을 바라보고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결국 교수님은 그 미팅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탁.

쓱.


아주 깔끔한 단음과 함께 노트북을 닫았다. 내 손은 이내 힘 없이 무릎 위로 미끄러졌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 몇 번 후에 눈을 떴다.

또르르. 눈물을 닦고 반려견 구름이와 눈을 마주쳤다. 구름이 털에 얼굴을 파묻고 흠뻑 하니 꼬순내를 들이켰다.


교수님이 안 들어오셨어.
내 연구주제가 형편없었나 봐.
모르겠어. 무슨 상황인지.

몇 시간 정도 지났을까. 친구들에게 연락해 하소연을 시작했다. 한국 친구들에게도. 독일 친구들에게도. 한국 친구들은 걱정하며, 함께 슬퍼해주었다. 반면 독일 친구들은 별 다른 걱정을 하진 않았다. 신기하게도 묘하게 더 안심되었다.


교수님이 확실히
일요일에 보자고 약속한 거야?
그럼 진짜 걱정 마.
내가 확신하는데
그 교수님 깜빡한 거야.
절대 그냥 안 올 일은 없어.

세명의 독일 친구들이 비슷한 말을 했다. 사실 미팅 제안 날짜에 일요일이 있다는 것 자체에 좀 놀라고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독일 사람에게 일요일은 휴식이 1순위인데, 그 시간을 내준다는 것이니까. 물론 감사한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더 커졌었다. 교수님이 내게 제안한 것이지만 왠지 교수님 시간을 뺏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다. 제안한 걸 그냥 받으면 되는데. 나도 참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다시 그 상황을 돌이켜 보았다. 아무리 교수라지만 말없이 약속을 안 지킬 것 같지는 않았다. 불현듯 교수님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부디 아무 일이 일어난 게 아니었길 진심으로 바랐다. 설령 이것이 n번째 교수님 콘탁의 마지막이라 해도 인사는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툭.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약속한 시간부터 한 시간 정도 기다렸고, 지금은 접속 중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디,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난 게 아니길 바랍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미팅을 하고 싶습니다. 혹시 지난번 제안 주셨던 목요일 여전히 가능할까요? 감사합니다.


이틀 후 D 교수님께 답장이 왔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내 인생경로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날. 교수님이 들어오지 않았던 날, 그때 독일 친구 하나가 말했다. ‘이상하네… 그래도 다 준비되어서 좋을 것 같아. :)’ 신기한 인생이다. 이런 인생 흐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들을 하는 것, 그게 사는 재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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