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 동안 n명의 교수님에게 연락하고, 좌절하고, 다시 시도했다. 그때마다 가장 가까이에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 친구 K가 있었다. 함께 독일 유학을 꿈꾸던 친구. 여행가이기도 했던 그녀는, 드넓은 유럽을 안내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같은 독일어 선생님에게서 독일어를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독일어 선생님이 독일 유학 대행 사업을 준비 중이라며,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릴 계획인데 센스 있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내 친구가 나를 소개했다.
독일어 선생님은 내게 인스타그램 피드 제작을 의뢰했다. 피드 한 장당 4만 원, 수업 한 번을 대체하는 조건이었다. 처음엔 순조로웠다. 톤 앤 매너가 정해지고, 피드도 다 올린 후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독일어 선생님은 내가 만든 피드가 4만 원의 가치에 미치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했다. 황당했지만,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도 아니었고 결과도 괜찮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독일어 선생님과 묘하고 불편한 기류가 흐르던 어느 늦은 밤, 친구 K에게서 전화가 왔다. 독일어 선생님이 내가 만든 피드를 자신에게 보여주며 ‘봐봐. 네가 생각해도 이건 4만 원 퀄리티 아니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그래도 그렇지. 내 친구에게 내 험담을 하는 건 참 옹졸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친구가 내 편에서 대응해 줄 거라고 믿었으니까. 내가 그 작업에 얼마나 공들였는지, 그 가격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낮은 퀄리티가 아니란 걸 친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금 독일어 선생님이
너를 엄청 미워하려고 해.
아, 그리고 피드가 4만 원 하는지 물었어.
그때 제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어.
내가 잘 모르긴 하는데
내가 봤을 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건 나의 인정 욕구와,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동시에 위협받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성심껏 해오고 있는지 나눴던 모든 이야기들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내 노력이 통째로 무력화되는 듯했고, 무엇보다 친구가 내 험담에 동조했다는 사실을 듣는 순간이기도 했다. 마치 주전자 속 수증기가 끓는점까지 차오르듯, 분노가 끓어올랐다. 나는 친구 K에게 따졌다.
독일어 선생님이 나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런 이유로
나를 미워한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어.
내가 지금 너무 화가 나는데, 너 때문이야.
그 퀄리티를 왜 네 기준으로만 판단해?
그리고 너 왜 그 사람이 하는 내 험담할 때
내 편에 서지 않고 그걸 긍정했어?
K는 적잖이 당황해했다. 그리고는 곧 미안하다고 했다. 그날은 나도 사과를 받으며 일단락되었다. 이후에도 독일어 선생님은 그 친구에게 나를 폄하했다. 이후에도 K는 ‘중립적인’ 태도를 이어갔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일이 또 터졌다. 독일어 선생님이 해준 첨삭이 도저히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첨삭 내용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게 이유였다. 독일어 시험을 단 일주일 앞둔 시점에, 선생님은 더 이상 나를 가르치고 싶지 않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약 40만 원의 대금을 주지 않은 채 수업을 중단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독일어 선생님은 K의 친동생에게도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물쭈물한 그녀의 태도를 보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녀는 그 독일어 선생님은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답답한 마음에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아끼는 사람들, 나와 네 친동생이
그 선생님한테 해를 입었어.
너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
K는 독일어 시험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그녀와 가까웠던 또 다른 학생도 이미 K에게 독일어 선생님의 수업 방식에 회의를 표현한 상태였다. 주변에서 해를 입었다면 나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왜 위험지대에서 나오지 않는 걸까. 어떤 한편으로는 K의 입장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선택들이 결국 그녀가 진심으로 애정하는 관계들을 등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또한 K가 애정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서운했다. 그리고 더 이상 K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K와 친구의 연에 종지부를 찍었다.
어떤 하루에 그녀는 내가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안다. 배신자는 누구일까. 그녀일까, 아니면 관계를 끊은 나일까. K가 방학 중에 부산에 내려가 있을 때도 우리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친구사이였다. 지금은 같은 독일, 불과 몇 정거장 거리에 살아도 가장 먼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가장 멀리서 서로의 안녕을 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