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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바로 타투남입니다

이제 걸러보시겠어요?

by 과니 Feb 05. 2025

아직도 그 통각을 잊지 못한다. 타투이스트가 된 후배에게 레터링 타투를 받으러 갔고, 누워서 오른팔을 올려놓자 커터칼로 내 살을 살살 베는 듯한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다. 타투를 하는 후배, 놀러온 후배, 내가 부른 후배까지 총 세명의 후배가 나를 보고 있었고, 평소 화상이나 찰과상, 찍힘 등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던 내가 움찔거리고 있자 나란히 한 소리씩 했다


"오빠 진짜 엄살 심하구나?"

"뭐야? 뭐 그렇게 못참아?"

"으휴 등치는 곰만한게."

"...다 나가..."


어찌되었건 타투가 생겼고, 나는 이게 용문신도 아니고 해골도 칼도 거미도 뭐 헌터X헌터의 히소카처럼 얼굴에 한것도 아니지만 공식적인 타투남이 되었다. 몸에 타투있으면 타투남인거 맞잖아. 근데 타투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 몸에 타투가 있다는 것도 잘 기억 못한다. 등치는 곰만한게 그것도 못참는다고 했던 내 후배도 얼마 지나지 않아 타투를 했는데, 샤워할 때 타투를 발견하고서는 '아 맞다 나 여기다 타투했지'라고 생각했다고. 사실 나도 누군가가 '그 팔 안쪽에 있는 건 뭐야?'라고 묻기 전까지는 내가 타투를 했단 사실을 잊고 산다. 이게 뭐 방사선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걸리적거리는 것도 아닌지라. 그리고 얼마전 SNS에서 타투한 사람은 거른다는 글을 봤다. 타투는 타투를 한 당사자들보다 그 타투를 발견하는 제 3자에게서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주목의 형태가 퍽이나 고운 편이 아니다.


단정적인 말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한자어는 서로 다르지만, 내가 단정이란 딱 잘라 말하는 단정과 교복이나 양복의 단정함이 비슷한 결이다. 마치 군더더기같은건 용납 못하겠다는 태도로 정색을 하는 기분이고, 어지러움이나 사사로운 것들은 다 취급하지 않겠다는 느낌이여서 마치 수학공식의 정답처럼 '~다움'을 강조한다. 조직사회에서 구성원으로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규율과 예법이 맞지만, 자칫하면 개성과 취향까지 모두 통제해선 꼴통 유교로 전락한다. 여자는 모름지기 어째야 하며 남자는 모름지기 저째야 하고, 담배를 피는 여자는, 나가서 일을 안하고 살림을 하는 남자는 글러먹었다는 식의 그런 잘못된 성인지적 태도도 이런 단정을 기반한 다움에서 나온게 아닐까 싶다. 타투는 걸려야 하는 대상일까? 그냥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보니 모든 언행에 의도를 생각할 때가 잦다. 상대가 쓴 문장의 호흡과 사용한 단어만 보아도 그 사람의 정서상태가 보일 때가 있기도 하다. 그림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그리는 사람의 관념으로 완성된다. 어린이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리겠다고 애를 쓴다면 다 큰 성인은 이제 만드는 창작물에 본인의 세계를 완성시키려고 한다. 미래사회에 대한 작품을 냈을 때 기계가 인간을 장악하려고 하는 터미네이터가 있었고 기계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그린 월E가 있듯이. 혹은 기계고 뭐고 다 망하고 죽고 좀비만 가득한 세상도, 아니면 초인류 사회를 만들어 내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런건 모르겠고 난 꽃 그리는게 좋아 히히'하는 사람 또한 있다. 내게 문신은 좀 그런 느낌이다. 자기의 어릴 적과 보살펴주던 엄마를 어깨에다가 문신한 내 전직장 사장님처럼, 가지고 있는 세계의 조각이다.


내 누나는 어깨 가까이에 꽃이 있고, 상어를 새겨넣은 후배가 있다. 마초적 성향이 강하던 다른 후배는 해골과 칼 타투를 했다길래 '지랑 똑같은거 하고있네'라고 한 적도 있다. 나는 흉터를 가릴 겸 문자를 새겼다. 'SED DEUS NON VULT' 직역하면 '하지만 신은 원하지 않는다'가 된다. 내가 양심통 느끼고 잘못했었던 과거들에 대해서 구태여 합리화를 하려고 하더라도, 나의 죄책감이란 이름의 신은 그 꼬라지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로 썼다. 나도 의미를 말했더니 타투 작업을 해주려던 후배가 '꼭 오빠같은거 쓴다'래서 웃어버렸다. 글이 좋아서 책과 잉크펜을 타투로 새긴 사람, 자기는 쉽게 보지도 못할 곳에다가 타투를 하는 사람, 온 몸이 문신인 사람도 있다. 그들이 걸러야 하는 사람들인가-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그들을 걸러야 하는 사람들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을 거르는게 유익할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꼭 들고 오는 예시가 이레즈미(소위 말하는 야쿠자 문신)인데, 누가 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레즈미만 하고 다니는 줄 알겠다. 손목에 쪼막만하게 메타몽을 그려놓고 포켓몬 굿즈몰을 돌아다니는 사람의 어디가 유해해보일까. 꽃을 옆구리에 그려놓아서 여태 모르고 있다가, 어느날 옆구리에 문신이 있다는걸 그 사람이 밝히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걸려야 하는 사람인 걸까? 아무리 성급한 일반화가 만연한 세상이라지만 그거야 말로 인간관계를 좁히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 아닐까. 직장인들 오피스룩 입고 다니느라 안보여줄 뿐이지 문신 있는 사람들 많은데,  일일히 타투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고 다닐수도 없을 테고.


저마다 자신의 곁에 무해한 사람을 두고 싶다는 욕망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게 피부에 타투가 있는지 없는지, 담배를 피는지 안피는지, 클럽을 갔는지 안갔는지 등으로 분별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술만 마시면 고주망태가 되는 사람이더라도 내게는 너무나 편할 수 있고, 골초라도 내 앞에서 담배냄새를 풍기려고 하지 않는다면 인상은 좋게 남는다. 말 자체는 거칠지만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발언은 하지 않는 사람, 자기가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에게 부러움은 느껴도 질투와 시기를 하진 않는 사람, 그렇게 타투가 있더라도 본인이 타투를 한 것을 굳이 과시하지 않는 사람과, 타투를 안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타투에 대해서 딱히 뭐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지. 그쯤 되면 '타투'와 '문신'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바스라지고, 호기심만 남는다. "그거 타투한거야?" "맞아! 이쁘지-? 여기도 있다!"


타투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기 몸이 도화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다. 트렌드에 따라서 타투의 유행이나 생김새도 달라지고, 그게 또 예뻐서 새기다가 보면 자기 몸에 가득 찬 타투와 더불어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의 순간들이 거기 담겨있다고. 나야 내 오른팔에 한 타투를 끝으로 내 몸에 더이상의 그림을 그릴 생각이 없지만 그것도 꽤나 재미있겠다 느끼긴 했다. 몸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되어있다는 게 글과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낭만적이겠다 싶고.


나도 당신들에게 편견을 없애달라고 강요하진 않을테니

부디 본인의 눈에 타투가 띄었다고 사람을 갑자기 가르진 말아주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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