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북은 하얀 줄무늬가 바다 깊숙이 사선을 그으며 침투하는 아침이면 수면 위로 뻗은 검붉은 암초에서 만나 함께 수영을 했다. 향유고래 주둥이처럼 뭉툭한 암벽이 곳곳으로 뻗은 작은 바위섬이었는데 이곳의 유일한 지상이었다. 바다거북이 육지거북을 만나러 수면 위로 오르려면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헤엄칠 수 있는 깊이에 한계가 있는 육지거북은 바다거북을 만나러 바다 바닥면까지 내려올 수 없었다. 육지거북을 위해 바다거북은 점점 자신의 거처를 수면 가까이로 옮겼다. 그는 육지거북과 같이 검붉은 암초에서 생활하고 싶었으나 단단한 턱 밑에 거대한 혹이 목구멍을 막은듯 숨을 쉴 수 없었다.
두려움이 그를 가로막았다. 바다 바깥에서 밤을 보내는 걸 상상한 직후의 일이다. 낯설지 않은 바닷바람이 피부에 흐르는 바닷물을 말라붙게 만들고, 바다보다 훨씬 명도가 낮은 하늘에서는 빛나는 수많은 눈알이 그를 쳐다볼 것이다. 모래톱 위의 형제들을 무신경하게 입 안에 넣고 씹던 네 개의 다리를 가진 절대자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바다거북은 검붉은 암초의 수면 아래 집을 짓고 밤을 보냈다.
이곳의 밤은 길고 낮은 짧았다. 바다거북은 육지거북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았다. 뭍에 사는 생물들과 자연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대상을 묘사할 때 석류 열매가 톡톡 터지듯 육지 거북의 생명력 넘치는 표정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걸 바라보며 시간을 잊었다. 육지거북이 가끔은 질투를 느낄 정도로 자주 언급한 대상은 뭍에 두고 온 자신의 아이들이었다. 순백의 알 여덟 개.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야자수 아래 땅굴을 파고 그곳에 아이들을 낳았다고 했다. 밑동에서 움터 나온 가지를 지붕 삼아 건초더미를 덮고, 그 위에 정어리 만한 크기의 메마른 나뭇가지들을 물어놓아 언뜻 비버가 지은 집처럼 보일 거라며 웃음을 흘렸다.
“비버가 뭐야?”
“다리 네 개 달린 육지 생물. 수영을 아주 잘해. 꼬리가 지느러미처럼 뭉툭한 데다가 납작하거든.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사는데 바다보다 좁은 강 하구에 나뭇가지를 가져다 둑을 짓고 생활해. 먹이를 보관하고 새끼를 키우고 그곳에서 잠을 자. 하루는 내 키만치 낮게 매달린 라임을 따먹으려고 나무를 흔드는데 그만 열매가 굴러 떨어져 비버들이 사는 둑까지 내려가버린 거야. 열매를 먹으려고 자그마치 세 시간을 흔들어댔는데! 그만 눈에 뵈는 게 없어져서 배딱지를 대고 경사진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더니 비버 한 마리가 내 열매를 두 손으로 집고 나를 빤히 보고 있더라고. 이미 한 입 베어 물어 시큼했는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면서. ‘내가 딴 열매야. 이리 내.’ 하니까 나더러 돌아가라는 듯 지느러미처럼 납작한 꼬리를 바닥에 튕겼어. 딱따구리가 나무 아귀를 쪼는 소리에 세 배는 더 시끄러웠어. 그렇게 내 몸집에 삼 분의 일도 안 돼 보이는 녀석한테 열매를 빼앗겼어. 나쁘게 생각하진 않아. 배가 많이 고팠겠지. 사실 비버들은 바다 물고기들처럼 아주 온순하거든.”
육지거북과 바다거북의 이야기는 이렇듯 문답형식으로 진행됐다. 비슷하게 생긴 등딱지를 가진 두 거북은 서로의 세계가 궁금했고 어머니가 아이를 눕히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구연하며 시간을 보냈다. 육지거북은 특히 해초더미에 기생하는 작은 생물들을 신기해했다. 그들은 작지만 모두 다르게 생겼으며 씹었을 때 톡톡 터져 흐르는 내장의 맛도 달랐다. 식사를 할 때마다 육지거북은 그가 잡아 올린 생물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했고, 그때마다 바다거북은 대단한 일을 해내기라도 한 듯 사냥법을 소개하며 우쭐거렸고, 새롭거나 좀 더 크기가 큰 녀석들을 찾으려 바다 아래로 내려 들어갔다.
그 뒤로도 크고 작은 두 번의 태풍이 지나갔다. 육지거북은 이제 눈으로 보지 않고도 자신이 먹은 생물의 이름을 맞출 수 있었다. 두 거북에게는 또 다른 태풍이 필요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이름 맞추기 따위에 머무를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바다거북은 육지거북의 눈치를 보았다. 육지거북은 해초를 질겅거리며 내뱉고, 내뱉은 해초를 다시 질겅거리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바다거북는 육지거북이 자신에게 더 질문해 주길 바랐다. 머지않았던 그날처럼 그녀는 자신이 입으로 담아 온 바다생물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자신은 그녀가 육지에서 보낸 삶에 대해 묻던 날이 그리웠다. 육지거북은 스스로 마음이 동해 내뱉는 칭찬에 아낌이 없었지만 바다거북이 바라서 하는 칭찬에는 인색했다. 그녀는 자신 마음에 진심인 게 중요한 거북이었다. 바다거북은 속상했다. 마음속 작은 서운함의 불씨는 바다거북이 물어오는 육지거북의 식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종으로 마련된 밑반찬은 두어 개로. 그것도 해초류가 메인 요리를 차지했다. 육지거북의 툴툴거림에 바다거북은 모른 척 태풍으로 인해 작은 생물들이 자취를 감췄다며 눈을 돌렸다. 육지거북은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바다거북은 육지거북이 보이지 않는 바다 깊은 곳에서 홀로 씩씩거렸다.
”그래, 연애는 미친 짓이다.“
디디는 그만 노트북을 덮었다. 택시에서 내려올 때만 해도 시원했던 밤공기가 방에 갇혀 미지근한 게 불편했다. 디디는 창문을 열었다. 쓰륵쓰륵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걱정은 탁한 밤공기를 앞지른다. 디디는 자신이 연애를 해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마지막 연애를 마친 건 불과 두 달 전.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겠다는 신조로 연애를 아껴오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다. 우려대로 시작은 좋았으나 끝은 뻔했고. 이후로 이전의 만남 패턴과 다르게 짧은 주기로 두어 번 편력을 거쳤다. 두 달간의 유예를 갖게 된 건 확실한 자의였다. 연애를 할 때만큼은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했으나 점점 눈의 총기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다. 그것은 상당한 겁으로 다가와서 디디는 당시 만나던 여자와 이별하고 한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다. 거울 안에 들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두려웠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소년의 인중에는 수염이 나 있었고, 인상을 찡그릴 때면 둥그런 이마에 한 줄기 주름이 파였다.
한 가지 고민은 비비가 직전 연애로 만난 여성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형언할 수 없지만 눈 맞춤 때 눈동자가 흔들리는 진폭이 달랐다. 디디는 자신을 좋아하는 여성과 만남을 시작했을 때는 P파로, 시작은 빨랐으나 마음의 동요가 적어 금방 차게 식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과 만남을 시작했을 때는 S파로, 시작은 잠잠했을지언정 마음의 세기는 길고 폭발적이었다. 디디는 분명 비비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비는 지나치게 친절하려 노력했으며 꾸며낸 목소리는 긴장으로 티났다. 디디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대화 사이정적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비비와 디디는 한결같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잔잔한 빗소리 같은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처럼 이들의 대화에는 급격한 변조는 없었으나 차분하게 서로의 삶을 침투해 갔다. 디디는 그 과정이 주는 편안함에 조금씩 마음을 뺏겼다.
다음날 일찍부터 디디는 교수님을 찾았다. 그녀가 부탁했던 업무는 진작에 끝마쳐 놓았는데 며칠 전부터 들뜬 목소리로 디디를 위한 깜짝 선물이 있다며 사무실로 방문을 재촉했던 터라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수 없었다. 디디의 교수님은 교육에는 소질이 영 없어 보였으나 문학판에 플레이어로서는 독보적인 명망을 지닌 사람이다. 중견 소설가 답지 않게 마케팅에도 일찍이 눈이 밝아, 매체로 간간이 출연하며 다정한 참견으로 평판도 쌓으며 두 아이를 돌보는 멋진 여성. 디디가 개인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당장에 통화를 끊고 해사한 미소로 디디를 맞이했다. 알리고 싶지만 애써 억눌러온 마음이 단숨에 풀리며 입으로부터 터져 나온 탓에 디디는 그녀가 부른 이유에 대해 바로 알 수 있었다.
“디디야 됐어. 기회다. 너 연애 안 하지? 소개팅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어. 널 원한대!”
해당 소개팅 프로그램은 나오는 족족 모든 출연자가 막대한 인기를 거머쥐는, 인플루언서 등용문과도 같은 방송이었다. 소개팅을 위한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인기를 위한 참가로 지탄을 받곤 했지만 어떤 속내를 갖고 참가했는지는 참가자 자신만이 알 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안에 디디는 현기증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자신도 모든 면에서 나쁘지 않은 조건을 소유했음을, 그리고 연애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부산물에 대해 자신이 믿는 교수의 입을 통해 들으니. 양손에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운명이 바뀔 것 같은 기회가 오면 희열과 더불어 맞먹는 크기의 두려움이 전신을 감싼다. 디디는 그것으로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음을 직감했고, 자신의 제자가 유명해질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교수의 들썩이는 어깨춤을 바라보다, 지난밤 비비에게 답장하지 않고 잠든데 자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