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가 글쓰기 수업 시간 빼먹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 독자를 미리 상정해 두고 글을 써보세요. 한 사람을 위한 글을 쓰는 거예요. 소설 미저리로 유명한 스티븐 킹은요. 무명 시절 세탁소 일 끝나고 돌아와 집필을 시작할 때면 꼭 아내 태비사 킹을 떠올렸다고 해요. 자기 전 수면등 불빛이 둥글게 뉘어진 침대맡에 앉은 그녀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느낌을 갖고 글을 쓴 거죠. 비단 그가 쓴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 분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다양한 사람을 설득시키려면 이야기 방향이 흔들릴 수 있고, 자신만을 위한 글을 쓰면 작가주의에 빠져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나올 수 있죠.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 는 아니지만 시도해 봐도 좋을 거예요.”
이미 수어 번 뱉은 내용을 설명할 때는 제 연설에 취한 정치인처럼 온몸으로 희열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 때 눈동자 안에 빛이 가득 모인다. 살짝 벌어진 입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을 볼 때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 사람을 위한 글쓰기.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학생들이 좌절할까 차마 덧붙여 설명하지 못한 진실이 있다.
십오 분만에 끝낼 수 있는 짧은 과제를 내주고 돌아 서서 아무도 듣지 못하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사람을 위한 글을 쓴다는 건 더 이상 나에게만 머무는 글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 나의 글이 불러올 당신의 해석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혹시나 당신이 거부해도 그 뜻 또한 존중하겠다는 정중한 의사. 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쓴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머리로 안다고 끝낼 일이 아니고, 마음가짐을 신경 쓴다고 곧바로 나아지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나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다. 당신을 이해합니다, 라고 말할 때에는.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탐구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통렬하게 아팠던 시간으로 당신을 이해합니다, 를 함축해야 한다. 풀이하면 그랬다.
너를 위한 글쓰기가 내 몸뚱이를 통해 이해한 너를 위한 글쓰기가 되기까지는 몇 가지 준비과정이 필요했다. 그것은 애초부터 바다 깊숙이 살던 생명체가 실은 뭍에서 살고파 이주를 결정하는 것과 같아서 헤엄쳐 빠져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비율을 잘게 쪼개보면 무지 속에 잠수해 있던 시간이 오십 퍼센트, 물속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자각한 시간이 사십오 퍼센트로 비슷했고. 물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데 든 시간이 오 퍼센트로 가장 짧았다.
수업을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뽑아 디디는 책상 앞에 앉았다. 앞전에 도저히 쓰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지나 선지 전과 다르게 이야기의 전개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바다 생활이 권태로운 바다거북 우화. 언젠가 거쳐간 인생의 한 정류소들이 모여 바다거북 줄거리의 인물과 이야기가 되어줄 것이다. 첫 문장을 디디는 꼭 이렇게 썼다. 알을 깨고 바다로 간 바다거북은 긴 시간을 자신이 직조한 세계 속에 살았다. 새로운 알을 깨는 출발점은 다름 아닌 그 세계 속에 있다. 첫 문장의 두려움을 깨고 나니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이 생기는 건 순식간이었다.
권태로운 바다거북이 있다. 일과 중 대부분의 시간을 빛이 들지 않아 달이 뜨기 직전의 하늘처럼 검푸른 물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자신이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닷속에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제반이 갖춰져 있었다. 특히 시각적인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았는데. 바다거북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은빛 덩어리로 몰려다니는 정어리 떼와 술래잡기하는 것. 그들은 대부분 까만 점으로 다가와 점점 거대한 은빛으로 증폭되는데 가까이 다가올수록 각각의 알갱이들의 힘찬 운동에너지가 눈으로 느껴져 경외로웠다. 수천의 정어리 떼가 발산하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 삶의 권태가 찾아오다가도 홀린 듯 은빛 덩어리를 쫓다 보면 금세 나아졌다. 바다거북은 자신을 피해 하얗게 질려 도망치는 얼굴들을 보며 자존감을 쌓았다. 합법적으로 약자들에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곳. 바다. 낙오되는 몇몇의 정어리를 우후죽순 돋아난 이빨로 찢어 먹고. 얇은 망토를 펄럭이며 떠다니는 해파리를 통째로 삼키는 게 낙이었다. 낮잠이 필요하면 무중력이 주는 고요 속에서 그저 둥둥 떠다니며 눈을 감았다.
바다거북은 분명 지금이 좋았다. 어린 시절부터 바란 안정이었다. 그는 꿈속에서 자신의 형제들을 떠올렸다. 따가운 바람이 살갗을 찢을 듯 불던 어느 가을밤. 머리를 수차례 검은 벽에 부딪치고 찾은 새로운 세계. 작은 구멍을 통해 가장 먼저 본모습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래톱 위를 기어 어디론가 필사적으로 향하는 거북들. 온몸을 좌우로 흔들며 전진하는 그들의 도약은 새가 비행하는 모습과 같았다. 도와줘, 누가 나 좀 도와줘. 목소리는 좁고 하얀 나선의 공간 안에 갇혀 맴돌았다. 거대한 진동으로 온몸이 울렸다. 바다거북은 몇 차례 머리를 부딪쳐 알을 깨고 탈출에 성공했다. 말랑한 젤리 같은 거북의 머리가 깨져 끈적거리는 주황색 피가 턱 아래로 길게 늘어져 흔들거렸다. 그때 바다거북은 보았다. 본인보다 수십 배는 거대한, 다리를 가진 털뭉치들이 가만히 서서 본인 형제들을 도륙하는 모습을. 죽을힘을 다해 뛰어도 길 수밖에 없는 모래톱 위의 거북들을 가만히 선 채로 시식하는 절대자의 모습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형제들과 비릿한 바다냄새. 그들의 네 다리 사이 바깥으로 필사적으로 기어, 형제들의 죽음을 발판 삼아. 마침내 파도가 자신을 쓸었을 때 그는 정신을 잃었다.
자신과 같은 외양을 가진 거북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함께 헤엄쳤다. 바다거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이면 모든 해낼 수 있는 바다에 감사했다. 하루는 물살의 흐름이 거칠었다. 분홍빛 해초가 뿌리째 뽑힐 듯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형광빛을 뿜었다. 물 밖에서 공기의 흐름이 거세지면 여파로 자신의 생활 반경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다.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낯선 환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다. 이마저도 늘상 있는 일. 올해로 서른을 넘긴 바다거북에게 원래 있던 곳을 찾기란 도전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바랐다. 모든 걸 주는 파도가 다시 한번 예상할 수 없는 곳에 자신을 던져 놓아주기를. 아무리 지느러미를 움직여도 고향으로 절대 닿을 수 없는, 두려움을 갖고 헤쳐갈 수 있는. 정어리 떼만 봐도 위협을 갖고 도망쳐야 했던 어린 시절처럼. 바다각질로 굳은 가슴이 다시금 뛸 수 있는 순간이 불현듯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기를.
쓰던 문장을 멈추고 디디는 손을 뗐다. 분명 뒷문단으로 바다거북의 권태로운 삶에 대해 쓰고자 했는데, 자꾸만 새로운 존재가 바다거북의 삶에 개입하는 문장을 찔러 넣고 싶은 것이다. 바다거북의 소원대로 그에게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 글쓰기를 중단시켰다.
디디는 프로작가다. 감정에 휘둘려 기획한 원고를 써내지 못하고 쓰고 싶은 글만 쓸 만큼, 훈련이 덜 되지 않았다. 한 사람을 위한 글쓰기를 강조한 누군가의 선생님이 자신이 쓰고 싶은 글만 써재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본인이 쓴 글을 차례로 받아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편집자의 슬픈 그림자가 떠올랐다. 책이 출판되고 북토크를 할 때에 책 준비과정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어딘가 앉아있을, 언젠가 자신이 가르친 수강생을 의식해 사실과 다르게 얼버무리고 말 것이다. 생각의 진원을 찾아야 했다. 디디는 추적에 자존심을 걸었다. 작가가 이미 정한 방향대로의 집필을 막는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
디디는 문자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