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거의 모든 역사가 집약된 북경이 중국의 심장이라면, 상해는 중국을 벗어나 세계로 향하는 아시아의 창 같은 곳이다. 그래서 상해의 첫인상은 너무나 중국적이지 않았다는 것. 대륙 속에 자리 잡은 북경에 비해 바닷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바깥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문물을 쉽게 접하면서 그 문화들이 좀 무질서하게 버무려진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 무질서함이 이상하게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상해에 오면 주로 가는 곳이 유럽풍 건물이 늘어서 있는 와이탄, 건너편에 상해 최고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가 서 있는 미래도시 푸동, 그 사이를 흐르고 있는 거대한 황푸강, 와이탄 안쪽으로 중국에서 가장 화려한 쇼핑가 남경동로(남경로 보행가), 그리고 명 왕조 시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예원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프랑스 조계지 정도일 것이다. 각각의 장소마다 거기만의 특징을 나타내는 건물이나 조형물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그 공간들 사이로 서민의 삶이 이어지고 있어서 묘한 조화와 부조화가 느껴지는 도시, 상해.
이런 상해를 나는 주변의 항저우와 쑤저우를 가기 위한 거점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입출국만 상해로 하고, 나머지 일정은 수향 마을에서 죽 보내기로 처음에 계획을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숙소가 있는 남경동로(南京東路)에 도착을 하자 세상의 모든 화려함을 쏟아부은 듯한 쇼핑 컴플렉스 속에서 군무를 추는 중국인들의 모습에 묘한 매력을 느꼈고,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와 있는 듯한 와이탄(外滩)을 바라보며 절대 가벼이 지나갈 곳이 아님을 직감했다. 언뜻 보면 유럽의 낭만적인 어느 도시 같지만, 지금의 이 모습은 1842년 난징조약(아편전쟁 패배 이후 영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에 의해 개항이 된 이래 열강들의 치외법권을 보장하는 조계지가 들어서면서 형성된 슬픈 역사의 산물이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것은 와이탄과 남경동로 사이의 이 알 수 없는 문화적 접점 지대였다. 중국과 유럽이, 근대와 현대가 만나는 이 거리의 풍경이 상해의 또 다른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과거를 허물지 않고 현대를 살아가면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는 대륙의 잠재성이 느껴지는 단면이기도 했다.
남경동로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어두운 색의 돌로 지어진 이색적인 건축물 지대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프랑스 조계지가 시작되며 이 일대를 신천지(新天地)라 부른다. 이 석고문(石库门) 양식은 1940년대까지 상해 주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일본과 중국의 합작 애니메이션 <우리의 계절은>에 보면 이런 석고문 양식의 연립주택 단지가 철거되는 과정이 잘 나와 있다. 그렇게 철거되고 남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상해에서 딱 한 군데 전통적인 중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예원(豫園)이다. 예원은 명나라의 대표적인 강남(양쯔강 이남의 지역) 스타일의 정원으로, 주위로는 예원상성(豫園商城)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전통시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놀라겠지만, 정원 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진정한 강남 스타일의 정원을 감상하고 싶다면 쑤저우의 졸정원(拙政園)을 가보시라. 대륙의 정원 스케일이 어떤 것인지 몸소 느끼게 될 테니.
상해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와이탄으로 다시 와 보니 시간이 근대에서 미래로 훅 건너뛴 느낌이다. 한 도시에서 이런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니... 이 느낌이 마치 상해의 발전 속도를 말해주고 있는 것도 같았다. 솔직히 나는 인공적인 빛으로 가득한 도시의 야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해의 와이탄에서 본 푸동 지구의 야경은 그런 선입견을 뒤엎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높은 것을 보며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의식이 꿈틀거렸다고 해야 하나.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지쳐서 힐링을 부르짖으며 잠시 그 세계를 빠져나온다는 것이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 있지 않았나. 너무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나. 이제는 깨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질적으로 성장할 때가 이제는 되지 않았나. 나도,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