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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May 08. 2020

중국의 서역, 신장위구르

감숙성의 오아시스 도시 둔황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주도 우루무치로 이동하고 나서야 비로소 회족과 위구르족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둘 다 이슬람교를 믿는 동일한 민족이라 생각했고, 위구르족의 또 다른 한자 표현이 회족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다른 민족이었던 것이다. 회족(回族)은 오래전부터 한족과 섞이면서 한족의 외모를 가진 민족으로, 중국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위구르족(维吾尔族)은 튀르크인에서 기원하며 터키인의 외모에서 느끼함을 뺀 버전으로, 아랍어와 거의 흡사하게 생긴 위구르어를 사용한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슬림 남자들이 쓰는 모자인데, 회족은 하얀 모자를 쓰는 반면, 위구르족은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문양이 박혀 있다.


과거에는 중국의 서쪽 변방에 위치했다고 하여 '서역'이라고 불렸던 신장위구르자치구. 그 거리만큼 여기서부터는 '신장 타임'이라고 해서 중국의 기준 시간인 북경보다 2시간이 느리다. 그래서 기차 스케줄 같은 공식적인 시간은 베이징 타임으로 표기하지만, 현지인들과 대화할 때는 2시간 늦게 해석해야 한다. 만약 신장위구르 사람이 9시에 만나자고 하면 북경 시간으로 11시인 것이다. 처음엔 이 시차가 적응이 안 돼서 9시라는 말에 정말 9시까지 약속 장소로 갔다가 허탕치기도 했다. 한 나라에서 다른 시간대를 사용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국은 정말 알면 알수록 양파 같은 나라이다.

우루무치부터 등장하는 아랍어 같은 위구르어와 이색적인 그림을 보니 벌써 중동에 온 느낌이다. 우루무치의 유명한 국제시장 따바자(新疆国际大巴扎)로 들어서자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가 완벽하게 오버랩되었다. 카스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만 생각했는데, 우루무치에서 서역에 대한 워밍업을 제대로 한 느낌이다.

우루무치에서 기차로 17시간을 달려 도착한 카스(喀什, 위구르어로 Kashgar)는 중동의 분위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황토색의 낡은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카스의 구시가지는 시리아의 잃어버린 도시들을 닮아 있었다. 인종과 생활상이 한꺼번에 바뀌어서 어떤 언어를 써야 할지 몰라 상점에서 머뭇거렸는데, 중국어가 너무나도 잘 통하는 이곳은 여전히 중국 땅이었다.

꽈배기 같이 생긴 과자가 궁금하여 사 먹어 보니 그냥 튀긴 밀가루 과자에 설탕 찍어 먹는 맛이었다. 이 과자의 이름은 '상사'인데, 비슷한 이름의 '삼사'는 화덕만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간에 돌돌 말린 밀가루 반죽은 그 유명한 라면의 원조 '라그멘'이다. 중국에서 면은 많이 먹어봤으니 그 옆에 있는 야채 볶음밥 '폴로'를 사 먹었는데, 양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해서 누린내가 제대로 올라왔다. 한족이 만드는 양고기 음식과 위구르족이 만드는 양고기 음식은 냄새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사람들은 재료의 풍미를 최대한 살려내는 것 같았다. 누군가 신장의 양꼬치는 소울푸드라고 했지만, 나와 양고기의 인연은 그냥 운남성까지였나 보다.

올드타운을 벗어나 인민광장 쪽으로 나오자 마오쩌둥 동상과 비엔나소시지 같은 홍등이 대로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여기는 중국 땅이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중국에서 티베트자치구와 함께 분리독립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우루무치에서는 거의 매년 테러가 발생할 정도로 한족과 위구르족 간의 대립이 살벌하다고 하는데, 실제 가보니 생각보다 평화로웠고 다들 너무나 중국어를 잘해서 오히려 내가 언어적으로 위축되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히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라고 밝히는 순간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해지는 건 있었다.


중국 정부가 이 황량한 사막 지역을 포기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석유다. 계속되는 사막화로 농업이 점점 쇠퇴하면서 상대적으로 석유 같은 지하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 이는 중국 경제의 세계적인 입지를 다지는 데 톡톡히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과거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여기가 현대판 실크로드를 재현하려는 '일대일로(一带一路)' 정책에 있어서도 여전히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분리해서 나가려 하고, 한쪽에서는 일방적으로 끌어들이려 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부르짖는 '인류운명공동체'라는 말이 어째 모순으로 다가온다. 서로가 존중하는 평등한 일대일로가 아닌, 어느 한쪽의 방법으로 인류를 끌어들이겠다는 논리는 오래 힘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은 구시대 버전의 한족과 위구르족의 융합 정책만 밀어붙이지 말고 이제는 분리독립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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