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의 3집 앨범에 나오는 '국경의 밤'을 좋아한다. 편지를 읽는 것도 같고 노래를 중얼거리는 것도 같은 멜로디 속에서 '시간 없는 곳에서 정지한 너'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부분이 국경의 분위기와 참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와의 경계에 있는 곳에서는 항상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진다. 공식적인 시차부터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역사, 다른 문화를 가졌지만 거리적으로는 이웃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묘하게 설레게 만든다. 중국의 최서단에 있는 국경 마을 타스쿠얼간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시간 개념이 모호해지는 곳이다. 여기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 무려 5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타스쿠얼간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카스지구(喀什地区) 소속의 자치현으로 정확한 명칭은 타스쿠얼간타지크자치현(塔什库尔干塔吉克自治县)이며, 위구르어로는 Tashkurgan이라고 한다. 이름이 참으로 긴데 그냥 위구르어로만 발음해도 무방하다.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스탄'이 붙는 여러 나라들과 인접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제일 높은 두 산맥과 건조하고 황량한 고원과 사막으로 둘러싸인 오지 중의 오지이다. 서안에서 만났던 현장법사도, 둔황에서 만났던 신라 승려 혜초도 여기를 거쳐 인도로 넘어갔을 것이다.
카스에서 타스쿠얼간으로 가는 길에 설산을 배경으로 이런 기다란 호수를 보았는데, 아마도 여기가 카라쿨 호수가 아닐까 싶다. 투어 차량이 아닌 현지인들과 합승 차량으로 이동하는 거라서 중간에 세워달라고 차마 말은 못 했는데, 도로 사정은 거칠지만 그만큼 야생의 자연을 접할 수 있는 루트이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이미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 줄여서 KKH)는 중국의 최서단 카스지구에서 카라코람 산맥을 통과하여 파키스탄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이며, 그중에서도 최고 높은 지점이 해발 약 4700m에 이르는 쿤제랍 고개(Khunjerab Pass)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있는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인 셈이다. '카라코람'이라는 말이 어째 낯설지가 않았는데, 몽골의 '카라코름(Kharakorum)'과 비슷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실제로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름으로 가는 중요한 관문이어서 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면요리를 먹고 마을을 산책하는데 이따금씩 숨이 턱턱 막혀온다. 타스쿠얼간 자체의 고도가 3200m라고 하니 일종의 고산병 증세인가 보다. 하지만 남미의 고원 지대에 있을 때처럼 괴로운 두통이나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은 숨 막힘까지는 아니었다. 메인 도로의 끝까지 걸어갔더니 멋진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저 산들이 바로 카라코람 산맥의 한 줄기일까?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산책로를 걷다가 이 국경의 도시가 지금까지의 중국과 다른 낯섦이 느껴지는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높은 빌딩도, 홍등도, 마오쩌둥 동상도 없었다. 아무리 산골짜기라도 버스터미널 근처에는 늘 시골임을 망각하게 해주는 마천루가 있었고, 대로변에는 중국의 상징과도 같은 홍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으며, 어떤 형태로든 마오와 관련된 조형물이 있었는데. 하물며 분리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티베트자치구와 신장위구르자치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 정부의 관심이 서쪽 끝까지 뻗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던 걸까.
그래서 국경에서는 아나키즘이 가능한 것 같다. 여기는 공산주의 냄새도 자본주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한족도 위구르족도 파키스탄인도 아닌 타스쿠얼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늘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댄디스트가 아닐까? 여기서는 무엇을 다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