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인도를 꿈꾸게 된 건 류시화 시인의 인도 에세이 두 권 때문이었다. 제목부터 시적인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과 <지구별 여행자>에서는 인도를 세상 가장 아름답고 판타스틱하며 감동적인 나라로 표현해놓았고, 거기만 가면 내 안의 모든 고민이 해결될 것만 같았다. 20대 초반에 무슨 고민이 그리도 많았나 돌이켜보니 그때부터 정신적인 세계에 조금씩 관심을 가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입문한 인도의 세계는 류 시인의 여행기와는 정반대의 인크레더블(incredible)함을 선사해주었는데, 길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남자는 성추행범이었고, 거의 모든 상인들은 사기꾼이었으며, 거의 모든 행인은 삐끼와 구걸로 연명하고 있었다. 아마 나는 그때 인도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욕보다 더 많은 욕을 쏟아냈으리라.
하지만 나는 또한 그곳에서 많은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고, 맛있는 탄두리 치킨과 라씨의 세계에 매료되었으며, 발리우드(Bollywood)라고 하는 인도 영화의 매력에도 푹 빠져들었다. 물론 요가도 인도를 다녀와서 배우기 시작했다. 한 번의 여행으로 이토록 많은 취미와 특기가 생기다니. 그때부터 시작되었나 보다. 상사병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인도 앓이'가.
그 후 요가로 커리어를 전환하면서 10년 만에 다시 찾은 인도에서 나는 요가, 명상과 더불어 정신적인 세계의 인연들을 곳곳에서 만났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 수많은 종교의 발상지인 이 나라에서 의외로 종교를 초월한 수많은 성자들을 배출해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 성인들이 내놓은 진리와 사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수행자들이 길을 못 찾아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진리'라는 것이 과연 진리가 맞는 것일까? 이렇게나 많은 중생들이 여전히 자유치 못하고 있는데...
2번째 여행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관련 서적을 참 많이도 읽었는데, 아마 나는 인도에서 풀리지 않은 것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요가 수련에도 회의가 들었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 몸에도 탈이 났다. 결국 모든 것을 접고 쉴 목적으로 떠난 3번째 인도행에서야 비로소 민족과 종교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해에 파키스탄까지 한꺼번에 다녀오면서 아마 양 민족 간의 정서를 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팽팽한 대립은 남북한의 갈등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이념보다도 무서운 것이 종교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초월할 수 없는 지적인 마인드의 결핍 또한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그때 알게 되었다.
브런치에 지난 인도 여행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인도가 이토록 '무거운' 나라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그래서 인도에게 미안해졌다. 말로는 존중한다고 하면서 나는 그 나라를 만만하게 봤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려고 했으니. 그렇게 이기적으로 여행하라고 그 나라 사람들보다 더 나은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주어진 게 아닐 텐데. 인도에서 보낸 시간을 모두 합치면 반년이 훌쩍 넘는데, 그 긴 시간을 깃털보다 가볍게 돌아다닌 것을 과연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나는 '여행'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어떤 장소에 끌리는 데에는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든지,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뭔가가 있든지, 어쨌든 나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콘텐츠가 분명히 있어서일 것이다. 그 명분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한계에 부딪힐 때 우리는 현장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지식의 목마름과 현장의 채움이 만날 때 비로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숨 가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탈'이 아니라 성장해서 한 단계 올라서는 '일탈'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브런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글쓰기 플랫폼에 감사한다. 글을 쓰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모순과, 나와 인연이 있었던 나라들의 취약점, 그리고 진정한 여행이란 어떤 것인지를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알게 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