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을 살다
3년. 아니 정확히는 2년 8개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지나간 시간을 헤아려본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담? 퇴사하고 보라카이에 다녀왔다는 건 가까운 이들에게만 털어놓았다. 혹시나 우리의 모험담(?)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이가 없으니 참 속 편하게 사는구나"라거나 "언제 철들래!"라는 날 선 말이 날아들 것만 같아서 우리의 여행은 클라우드 서버 속 사진으로만 남겨두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견고했던 기억은 빙하가 녹듯 야금야금 줄어들었고 당시의 생각과 감정이 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기록이 어느덧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다녀오고 난 후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다녀오니 행복한가요?"
이번 글에서는 그 대답을 해보려 한다.
보라카이에서 귀국한 후 해외살이의 여운이 남아 짧게 발리와 방콕 여행을 다녀왔다. 방콕에서 돌아온 후 뉴스를 보는데 중국 우한에서 사람들이 신종 바이러스로 픽픽 쓰러진다는 마치 괴담 같은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2020년 1월이었다. 우리가 막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메르스나 다른 감염병처럼 몇 달 유행하다가 사그라들 줄 알았던 이 바이러스는 끈질기게 변이를 계속하며 온 인류를 고통과 고립 속으로 몰아넣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재취업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다행히 남편과 나 둘 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연락을 해왔다. 남편의 경우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에서도 입사제의를 받았지만 전에 다니던 회사를 선택했다. 업무 조정을 통해 전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상황에서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역시 옛 선인들의 혜안이란.
나 역시 전 직장에서 재입사를 권했지만 다시 그 혼탁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제의를 거절했다. 배부른 짓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근무여건이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관계까지 힘들어 간신히 버티며 다니던 곳이었다. 그곳에 몸담고 있을 때는 남의 돈 벌기가 어디 쉽나, 라는 생각으로 그저 견뎠는데 바깥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니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그 후 몇 곳에 입사지원을 하고 인터뷰를 보러 다니면서 회의감이 들었다. 40대 후반의 기혼 여성에게는 양질의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내 나이에 앞으로 얼마나 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어 일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점점 짙어졌다. 차라리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노후에도 소소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편이 낫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할까? 찬찬히 탐색한 끝에 평소 좋아했던 글쓰기를 꾸준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나는 혼자 하는 일이 잘 맞았다. 다행히 브런치 작가로 첫발을 내디뎠고 현재 책 읽어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아직은 미미한 단계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언젠가는 노력한 만큼의 결실이 돌아오리라는 긍정적인 기대를 품고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이 공간에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쏟아놓고 있다. 나이 들면서 겪는 상실과 공허. 유년시절의 기억, 여행지에서의 설렘과 에피소드 등 수시로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생각과 감정을 붙들어 백지 위에 글로 옮기는 작업은 고되지만 뿌듯하다. 앞서 적은 열 편의 글 역시 그렇게 써 내려간 일상의 기록이다. 번아웃에 빠진 40대 부부가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을 뒤로하고 훌쩍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꾸린 기록.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쳇바퀴 속에 갇혀 있었겠지만 용기를 낸 덕분에 인생에서 두 달이라는 풍요롭고 충만한 시간을 보냈고 그 기억은 이렇게 책 한 권 분량의 소중한 기록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다 내팽개치고 훌쩍 떠나라고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부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모두가 재취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기존의 문제들이 마법처럼 사라져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좀 더 행복해지는 쪽으로 선택하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마련해두는 것이 좋다.(우리의 경우에는 전 직장에서 다시 돌아오라는 언질을 주기도 했고, 만일 재입사가 안되면 창업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녀오니 행복한가요?
이제 이 질문에 답하자면, "네, 그래요. 충분히 쉬었고 일도 즐겁게 하고 있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지만 현실이 어디 그렇던가. 내 경우에는 재취업이 좌절되면서 돈 버는 존재로서의 효용가치가 다해 버린듯하여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녀오기 전보다 더 여유롭고 충만해졌다,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의 폭만큼 더 성장했고 더 유연한 사고를 갖게 되었다. 번 아웃되었던 남편은 넉넉한 자연의 품에서 회복되었고, 조급하고 시야가 좁았던 나는 조금 쉬어가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도 인생이 풀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브런치 작가나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삶만을 절대 진리처럼 사수하던 내가(쓰고 보니 뼛속까지 노동자 마인드라 불쌍하다.) 얼마나 단편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남들처럼 살지 않는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면서 내 세계도 더 확장되고 있다.
요즘 남편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는 퇴근하고 소파에 앉아 맥주로 목을 축이며 내가 브런치에 올린 보라카이 여행기를 읽는 것이다. "잘 썼네. 읽다 보니 또 가고 싶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 그 순간만큼은 수다쟁이가 된다. 그런 남편을 보면 내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간다. 내게 행복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남편과 이야기하며 마주 보고 웃는 저녁.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지만 순간순간의 행복을 마음에 저장하고, 혹여나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서(잠깐 주저앉아 울 때도 있겠지만) 그렇게 계속 살아가려 한다. 떠나기 전의 삶의 목표가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이었다면, 이제 우리 부부의 삶의 목표는 매일 조금씩 더 행복해지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