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뜰살뜰 구구샘 Jun 13. 2024

더러운 여신과 결혼할 바엔 차라리

강용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나의 20대 후반은 암울했다. 짝짓기 경쟁에서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주위 친구들은 하나둘 유부남의 세계로 떠났다. 블랙핑크의 제니는 '빛이 나는 솔로'였겠지만, 나는 그냥 '냄새 나는 솔로'였다.(원룸 자취방의 냄새는 해피바스 바디워시를 뚫고 나오더라)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분이 있었다. 같이 근무하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결혼 3년 차였다. 짝짓기 시장에서 결과로 증명한 분이라는 거다. 그 쌤이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쌤, 더러운 여신보다는 깨끗한 여자사람을 추천합니다."


선생님 말씀의 핵심은 이거였다. 거슬리는 게 없는 사람하고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절세 미녀인데 더럽다? 그런데 그게 거슬린다? 연애할 땐 넘어갈 수 있단다. 하지만 결혼은 완전 다를 거라나? 왜 그런 유명한 말도 있지 않는가. 결혼하면 여친이 집에 안 돌아간다고. 결론은 어느 분야든 거슬리는 게 없어야 한단다.


그 말은 내 5번 갈비뼈에 깊숙이 박혔다. 법륜스님을 뺨치는 그분의 조언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나도 결혼이란 걸 했고, 6년 차인 지금도 어찌어찌 아내와 잘 살고 있다.(물론 아내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만)



더러운 여신보다는 깨끗한 여자사람이 나은 이유는 뭘까? 뇌피셜로 끼적이자면, 결혼은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이제 결혼 6년 차인 내가 언급하긴 좀 우습지만 결혼은 장기전이다. 회사 하나를 두 사람이서 경영한다고 보면 된다. 결혼 생활은 주식처럼 상장해서 엑시트 할 수 없다. 백년해로가 가장 큰 목표다. 롱런하려면 결국 거슬리는 게 없어야 한다.


여기 미혼의 여자가 한 명 있다. 복에 겨운 여자다. 자기랑 결혼해 달라는 남자가 둘이나 있다. 이 여자는 누구랑 결혼해야 할까?


1번 상대: 매력 500점 / 재력 550점 / 성격 -50점

2번 상대: 매력 20점 / 재력 10점 / 성격 20점


1번 후보의 총합은 무려 1000점이다. 플러스 마이너스 하면 그렇게 된다. 반면 2번 후보의 총합은 50점이다. 1번 후보에 비해 무려 20배나 차이나는 점수다. 하지만 나에게 조언해 준 그 선생님의 말을 따르자면 2번 후보를 고르는 게 맞다. 마이너스 점수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척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매력을 높게 평가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재력에 높은 가치를 둘 것이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취향 차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이너스가 없어야 된다는 거다. (결혼 후 배우자를 고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은 하지 말자)


-청결도, 평생 안 거슬리겠는가?

-코골이, 영원히 괜찮겠는가?

-술버릇, 끝까지 감당 가능한가?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다면 결혼하면 된다. 상대가 엘프 같은 절세 미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 책의 저자가 계속 인용하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그렇게 말했다.


1. 인생은 고통이다.

2. 행복은 고통이 없는 상태다.

3. 그러므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 한마디로 빡칠 일 만들지 말라는 뜻)


우리는 행복하려고 결혼한다. 열받으려고 결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쇼펜하우어는 일관되게 외쳤다. "빡치지 말고 행복하세요~!"



당신이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이거 하나만 해보자.


1. A4용지 중간에 가로로 직선을 하나 긋는다.

2. 직선 아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자의 가치를 적는다.

(외모, 재력, 성품, 코골이, 음식솜씨, 집안일 등등)

3. 예비신랑/신부를 떠올리며 점수를 매기자. 막대기가 위로 가면 +점수다. 아래로 향하면 -점수다.


모든 항목에 마이너스가 없는가? 그럼 조상님께 감사하자. 영혼의 단짝을 만난 것이다. 더 좋은 짝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자. 이미 당신은 최고를 가졌다. 앞에 있는 내 짝에게 프러포즈를 날리자.



이런 개똥철학 글을 싸지르는 나는 어떤 배우자랑 결혼했냐고?


1. 더러운 여신?

2. 깨끗한 여자사람?


감사하게도 나는 '깨끗한' '여신'과 결혼했다^^

(이 글은 내 아내가 볼 수도 있다. 나를 살려달라...ㅠㅠ)



덧) "사람을 어떻게 점수로 환산해!"라고 불편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당신의 의견이 전적으로 맞다. 나의 비루한 글솜씨로 인해 불편함을 끼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ㅠㅠ...



사진: Unsplash의Brittney Weng

이전 18화 당신의 아이, 깡패로 만들어 드립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