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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행정도 가끔은 필요해

파이브 가이즈 감자튀김 속 비밀

by 고독한 사색가 Jan 10. 2025
서울로 7017, 원래 차가 다니는 고가도로였다. 사진출처 서울의 공원

  2017년쯤이었나, 서울역 고가도로가 보행길로 탈바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 그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그 막히는 서울역 앞 도로를 더 깔지는 못할 망정 없애버린다고? 아냐, 고가도로가 도시 미관에 안 좋긴 해. 청계천 고가도 없어지고 삼각지 고가도 없어졌잖아? 그럼 서울역 고가도 없애든가. 보행길은 뭐야?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나 보다. 시민들의 반응도 냉담했다.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보행길은 서울로 7017이라는 멋진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름조차 그럴싸해서 사람들은 포장까지 잘 된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며 서울시장을 비판하며 화를 냈다.

이처럼 비판받는 전시 행정이 실질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경우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전시 행정도 때로는 우리 사회에 필요할까?


보여주기의 힘: 파이브 가이즈 감자튀김의 비밀

파이브 가이즈(Five Guys)는 유명 수제버거 프랜차이즈다.

몇 해 전 미국 인기 햄버거 체인 파이브가이즈(Five Guys)가 한국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감자튀김을 주문하면 종이컵에 담아주는데, 어찌나 가득 담아주는지 넘쳐서 종이봉투 안에 가득 쌓일 정도다. 종이컵에 쏙 들어갈 정도로만 퍼줘도 다들 별 불만을 하지 않을 테지만, 추가로 넘치도록 퍼주는 이 행위는 사실 회사의 판매 전략이다.

제릴 머렐(Jerry Murrell) 창업자는 이를 두고 “우리는 고객이 돈을 쓴 만큼 충분히 대접받는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라고 했다. 이 보여주기식 전략은 단순히 만족감을 넘어, 브랜드 충성도를 높였다. “거기 비싸지만 돈 값 해.”라는 입소문을 유도하여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전시행정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실질적 성과보다도 눈에 보이는 변화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요새 어린 자녀에게 쓰는 돈 중 부모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이 영어유치원이라고 한다. 영어 유치원이 실질적으로 아이에게 어떤 성과를 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가서 몇 년 동안 한국어로 떠들다 보면 영어를 다 까먹고 리셋된다. 하지만 영어유치원을 다녀온 뒤 “하이 맘. 아임 홈. 굿 애프터눈.” 하는 그 눈에 보이는 변화에서 부모들은 큰 만족감을 느낀다. 한 달에 수백만 원이나 하는 영어유치원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드론을 띄워 현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는 신뢰를 느끼곤 한다.


서두에 언급한 서울로 7017도 이와 비슷한 심리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도시 한복판에서 녹지 공간을 거닐 수 있다는 경험은 시민들에게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했다. 이는 단순히 쇼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서울시는 시민들의 삶의 질 개선에 관심이 많습니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시민들이 “서울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만족감을 느끼게 했다. 또한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어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는 결국 보여주기식 행정이 단기적 심리적 만족을 넘어, 장기적으로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작정 쇼만 하자는 건 아니다

물론 전시 행정이 무조건 좋고 옳다는 건 아니다. 보여주기 쇼만 하고 실질적 성과가 없으면 오히려 시민들의 불신만 커진다. 하지만 파이브 가이즈의 감자튀김처럼, 때로는 과한 듯한 연출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 정책 홍보, 시민의 심리적 만족감 증진 등 여러 분야에서 전시행정은 사회적 신뢰를 강화하고 공동체의 긍정적 에너지를 북돋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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