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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의 주임원사

혹은 전학생에서 복학생으로

by 아빠 민구

아이들이 태어난 지 6일 차, 나는 조리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확실히 자연분만보다 회복이 더뎠다. 그 사이 나이를 더 먹은 것도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도 이제 조리원에 가면 좀 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짐을 풀었다.


첫째 때 광주에서 지냈던 조리원을 생각했다가 깜짝 놀랐다. 조리원은 흡사 학교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규모가 컸고 산모들로 넘쳐났다. 분위기도 여학교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니 마치 '00 여자고등학교' 같았다. 조리원은 저출산 시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입소 후 첫 식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갔다. 고작해야 2-3주를 지내면서 알게 된 사람들일 텐데 모두가 학창 시절처럼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왁시끌덕시끌. 분위기에 압도가 될 것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 사교성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저렇게 친해져서 언니 동생하고 저렇게 재밌게들 지내는 건지.


나는 전학생이 된 것처럼 몇몇이 모여있는 식탁의 끝 자락 남은 자리에 한 칸 띄우고 앉았다. 내 옆에는 나처럼 이제 막 들어왔는지 어색하게 혼자 밥을 먹는 다른 산모가 앉았다. 우리처럼 막 들어온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들 ㅇㅇ여고 점심시간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잠시 뒤 입소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시설에 대한 설명부터 모유수유 방법이라든가 여러 가지 육아 팁을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시간은 길고 지루했다. 이미 다 해봐서 알던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강사분이 산모들 몇몇을 지목해서 이번이 몇째 아이냐고 물었다. 어쩌다 보니 나에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아, 저요? 위로 아들 둘 있고 이번에 쌍둥이 출산했어요"


주변에서의 나지막한 수군거림이 들렸다. 산모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강사분께서는 "저분한테 다 물어보세요-! 저분께서 다 알고 계실 거예요-"라고 덧붙이셨다. 전학생이 복학생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수유실에 가서 아이들을 먹이고 있으면 주변에 앉은 산모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공유해주었다.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제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침 조리원에서는 무료로 모유 촉진차를 나눠준다고 하여 함께 수유를 마치고 차를 받으러 가게 되었다. 조리원 직원은 나에게 유축하면 얼마나 나오는지를 물어봤다. 나는 '한 번에 000ml 정도요'라고 답했다. 직원은 적잖이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유-!! 그러면 안 드셔도 돼요-!!" 다시 한번 같이 내려간 엄마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사실 나도 모유량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째, 둘째 모두 1년씩 완전 모유수유로 키워냈고 이번에도 욕심이 나기 때문이다. 욕심보다도 자연분만을 못하고, 잘 크고 있는 아이들을 배를 갈라 꺼냈다는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 모유라도 충분히 먹이고 많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어쨌든 지금 수준이라면 모유 촉진차는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유 양도 양이지만 사실 지금처럼 두 명을 연달아서 먹이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조리원에 와서도 왜 낮잠 잘 시간이 없나- 생각해보니 하루 종일 아이들을 번갈아서 먹이고 있어서 막상 '내가 쉴 시간'이 없었다.


실밥 뽑는 날이 되어 남편이 에스코트를 하러 왔다. 병원으로 가면서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아이들보다 나 자신을 생각하면서 지내라고 한다. 이 번이 마지막 몸조리인데 최선을 다해서 회복하라고. 근데 또 모성이라는 것이 자식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게 두질 않는데- 남편은 이해가 잘 안 되는지 핏대를 세워가며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조리원은 어때??" 남편의 질문에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조리원의 분위기를 설명해줬다.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여보 전학생에서 복학생이 된 것이 아니라, 이등병들하고 같이 훈련하는 주임원사네"라며 치켜세워주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정말이었다. 어쩌다 보니 자연분만도 해보고, 제왕절개도 해보고, 아들도 키워보고, 딸도 키워보고, 쌍둥이도 키워보고, 완전 모유수유도 해 보고- 아무튼 출산 육아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일반적 경험을 다 해본 이 구역의 베테랑이었다.


잠시 아련한 과거로 날아가 첫째 낳고 조리원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옆에 있던 산모는 셋째 아이를 낳았다고 했었고, 나는 '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셋을...'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난 넷을 낳았고, 날 보던 주변 엄마들의 시선이 생각나서 웃음이 '크큭-' 삐져나왔다.


* 아내에게 들은 내용들을 아내의 시각에서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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