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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Mar 14. 2023

혼자 먹은 생일 밥

문제인가 답인가

얼마 전 생일을 지냈다.

생각해 보니 생일은 늘 적적한 편이었다.


매년 3월 초, 아직 같은 반 친구들과 친해지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었다. 다른 글을 통해서 몇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매년 이사를 다녔던 나에게는 '동네친구'조차 흔하지 않았다. 가정형편도 어려웠고, 집은 지하와 반지하를 오르내렸기 때문에 몇 없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로 느꼈었다.

  

이러한 이유로 생일은 늘 적적한 편이었다.


생일이 지난 지금도 서른여섯 번째 인지, 서른일곱 번째 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른 중반의 생일을 보냈다. (서른을 넘어서면서부터 나이를 세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침은 먹질 못했다. 부대에 일이 있어서 다른 가족들이 깨기 전 일찍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리고 퇴근.


"아빠 오셨어요!!" 목욕을 마친 아이들이 비누향을 풍기며 현관에서 나를 맞이했다.


퇴근을 하니 아내가 종일 고군분투하여 아이들을 씻겨 놓고 밥도 지어 놓았다. 사실 아내랑 며칠 전 싸워서 대화는 안 하고 있었지만 나름 준비한 첫 번째 선물인 듯싶었다.  


"치-익-"


아내가 양갈비를 굽기 시작했다. 아이들 넷 키우면서 제일 먹기 힘든 게 '구워 먹는 고기'인데, 때문에 나는 아내와 단둘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만 나면 "고기 먹으러 가자"라고 해왔었다. 아마도 나름 준비한 두 번째 선물인 것 같았다.


고기가 구워지고 이제 식사를 하려고 보니 2미터짜리 6인용 식탁에 내 밥 1인분만 차려져 있다. 나는 종종 (혹은 자주)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었다. 실제로 체기가 올라오기도 자주였다. 특히 막내들 자아가 형성되고 어떻게든 자기 손으로 숟가락질을 하겠다는 고집을 피우기 시작한 이래로는 그 난리법석 식사자리가 더 터프해졌었다.


"왜 내 거만 차렸어?"

"아니 편하게 혼자 먹으라고"


아직 화해 이전이라 대화는 명태처럼 건조하게 바스러졌지만 명태를 말린 바람이 따듯한 바람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혼자 먹는 미역국에 양갈비가 아내가 준비한 세 번째 선물인 것 같았다.


혼자였기 때문에 서른 몇 번의 생일이 적적했었다면,

오늘은 혼자이기 때문에 편안하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선물이었다.


물론 고기를 먹고 있는 나를 가만히 둘 아이들이 아니었다. 네 명의 아이들이 모두 식탁으로 모여들고 쌍둥이들은 무릎 위로, 식탁 위로 올라와 결국엔 고기를 다 뺐어 갔지만(아니 며칠 굶은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래도 온전히 물어 뜯은 양갈비 한쪽으로, 충분했다- 라는 만족감이 꼬리뼈에서부터 척추 기립근을 타고 올라왔다. 생일에 밥은 혼자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답'인 상황이었다.

 

지금은 화해했지만, 당시에는 대화도 안 하던 나에게 이런 생일 선물을 차려준 센스 있는 아내에게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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