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절필에 가까운 1년을 보냈다. 그래도 작년엔 과자부스러기 같은 시간들을 싹싹 쓸어 모아 글을 쓰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더 바빠졌다는 것이다.
네 명의 아이들은 더 많은 손이 가고, 더 많은 사랑과 함께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아내도 나와 함께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더 중책으로 옮겨간 내 보직에서도 더 많은 업무강도를 요구한다. 대학원 시험과 과제들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 대인관계나 취미생활 같은 것들은 반영할 틈도 없다.
대체로 치이고 또 치이는 일정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쩌다 아이들 일찍 재우고 집안일까지 마무리했는데도 시간이 남으면 소파에 누워서 유튜브나 좀 보면서 졸다 잠이 든다. 무언가 더 실행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일상이, 습관이, 보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좋은 핑곗거리였다. 바쁘고 피곤하다는데 억지로 글을 쓰라고 등을 떠미는 사람은 '브런치의 글 독촉 알림' 말고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든 증기를 뿜으며 달려 나가던 나의 키보드는 그렇게 '정비 중'이라는 안내문을 걸어놓고 휴동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녀 양육에 있어 반복되는 실패에 따른 대단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을 잘날 없었고, 네 명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건사하고 교감하고 가르칠 수 있는 여력은 부족했다. 능력도 시간도 재력도 부족했다. 아이들은 그런 '다양한 결핍'의 상태에서 문제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 되었음에도 더 심화되는 첫째의 불리불안, 사소한 일에도 소리 지르거나 멍 때리는 일이 잦아진 둘째, 폭력성을 보이는 셋째, 계속 안아달라고 보채며 징징거리는 넷째.
이런 아이들의 문제는 아내와 나를 옥죄기 시작했고 스트레스와 등가교환되었다. 안 아픈 곳이 없는 아내와 내가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되어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과 실수에도 대노하거나 좌절하기 일쑤였다. 화가 화를 낳았고, 화가 대대손손 번성하며 우리 집을 잠식해나가고 있었다.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약접합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악순환의 사슬은 견고하게 이어졌다. 우리 집은 주춧돌부터 처마 끝까지 총체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글을 써 나갈 수 없었다.
아니, 쓸 수는 있었다. 브런치도 일종의 SNS 개념으로 접근해서 인스타에 그럴듯한 사진을 올리듯 아이들에 대한 반성이나 자전적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썼던 글 중 일부는 그런 '미화'작업을 거친 이야기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네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 같은 이야기는 위선이고 허상이다. 특히 필명을 '아빠 민구'로 사용하고 있는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 그런 글들을 꺼내놓은 것은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목적과 명분이 불분명하다. 자투리 시간을 끌어모을 자력이 부족하다. 약 3년 전 시작된 글쓰기에 불씨가 사그라들었다.
아빠민구로서의 기록은 실은 실패의 기록이다. 때론 실패를 성공인 것처럼 꾸미고 있었지만, 글을 쓴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동안의 작은 성공들과 연속되는 큰 실패들의 벡터값을 합산하면 뒤쪽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즉 나는 실패에 가까운 아빠다. 보통 이하의 남편이자 군인이다. 아빠라는 부분에서 낙제점을 매기자니 점이 뼈아프다. 아이들의 문제는 부모에게 있다고, 13년의 군생활 동안 수많은 병사들을 만나면서 깨달았고,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했는데 정작 내 자식들을 제대로 보살피고 양육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반성중이다. 관련된 모든 문젯거리들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