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 민구 Mar 04. 2023

입학 : 그대로인 아이와 괜히 불안해진 나

입학이 뭐라고



첫 아이가 입학을 하고, 난 학부형이 되었다.


입학 전날, 미리 준비해야 했지만 하루하루 바쁘고 숨 돌릴 틈 없는 날들 속에 미쳐 준비 못했던 학용품들과 책가방, 운동화를 사러 백화점엘 갔었다. 이제 진짜 학교에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괜한 긴장감과 조바심이 드는 것 같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아내는 반면, 3월부터 시작될 등하원과 아이들 보육에 큰 부담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또 거기에 대고 "여보 직업이라고 생각해"라며 위로대신 책임감을 덧씌웠다.

  

당장 학교를 간다고 하니 나도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우리 애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는데, 학교에 가서 바로 뒤처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직장에 지각하는 것처럼, 내가 훈련 때 중요한 장비를 챙기지 않은 것처럼 간담이 서늘했다. 사실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이제 와서 "왜 학습지 하나 시키지 않았지"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정말이지 아이들 공부는 학교 이후부터라고 생각하며 그 흔한 학습지 하나, 학원하나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는 한글조차 가르치지 않아서 본인이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놔두었다. 생각해 보니 친구들은 영어유치원이다 뭐다 해서 장난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불안이 이제는 '엄습'했다.


급하게 아이를 불러다 놓고 덧셈을 해봐라- 뺄셈을 해봐라- 곱하기, 나누기, 구구단을 해보자. 라며 몰아세웠다. 아이도 처음에는 즐거워하다가 나의 황소 같은 모습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긴장을 하니 대답도 잘 못하게 되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 모습에 더 답답하고 조바심이 난 나는. 반대로 목소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악순환이었다.


아내의 "워-워-"로 간신히 상황을 넘겼지만 이제야 '상황의 심각함'이라는 개념을 지어낸 내가 쉽게 가라앉을 리 없었다. 아이들은 잠들었지만 아이의 등교 준비물들을 챙기면서 마음을 정돈해 보았다. 준비물은 왜 그렇게 많은지- 준비물을 챙기다 보니 새벽 네 시가 가까웠다.


아이의 첫걸음을 기억하려 휴가도 내고 학교를 찾았다. 그리고 간단히 한 시간 만에 학부형이 되었다. '무직'에서 '학생'으로 아이 신분이 전환되었다. 이제 이 신분으로 십 년도 넘게, 혹은 평생 공부를 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공부를 해봤지만, 공부라는 게 사실하는 동안에는 특별히 즐거움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공부시키지 말고 맘껏 놀게 하자는 취지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결정이 옳았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아이가 친구들을 돌아보면서 알게 될 부족함과 결핍, 일종의 열등감 들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양분과 자극이 되어 아이를 더 빠르게 성장시키리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사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아서 고전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영어문장을 술술 말하고 읽는 친구들을 보며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다. 나는 '영어 공부'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그때 당시에는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특별히 가르치지 않았었다. 나는 그제야 'I am a boy'를 배우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는데 그때의 친구들과 '초격차'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불안과 결핍, 열등감은 학창 시절 내내 나의 원동력이 되어 스스로 더 공부하게 만들었고,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해라"라는 말을 한 번도 듣지 않았지만 원하는 만큼 성적을 만들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내 아이도 그럴까. 그렇게 되겠지? 그럴 수 있겠지?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불안과 안불안이 교차편집되며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입학식에서 만난 엄마들이 아내를 카톡방에 초대했다. 아이들을 같이 축구교실에 등록시키자는 것이었다. 시간대를 조율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이미 다니는 각종 학원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내 아이는 고작 태권도 하나 다니는데.


아, 내가 잘못된 건가-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게 되었다가도. 한편으로는 아니 도대체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아이에게 무슨 국영수에 코딩에 드론에 미술태권도축구야구 학원까지 보내가며 어떤 전인교육을 시켜가지고 위대한 시대적 영웅을 키워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긴 했겠지만, 우리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때가 되면 다 대학 가고 취직하고 살길 찾아가던데-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술, 피아노 학원 다녀오면 뒷산에서 곤충 잡고 풀, 나무 관찰하고 뛰어놀았던 게 전부였던 것 같은데.


도대체 시대가 얼마나 바뀐 지 30년 전에 초등학교를 갔던 나와, 30년 후 초등학교를 보내는 나의 상황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어제도 8살이고, 오늘도 8살인 첫째 아이에게 많은 환경이 바뀌고 나의 기대와 불안감이 바뀐 것처럼 말이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말이다. 입학이 뭐라고 말이다.


어쨌든 내 아이는 당장에 학원도, 학습지도 시작하기 않기로 했다. 심지어는 반 친구들과 축구교실도 보내지 않기로 했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도 당연히 크게 작용하였지만, 그보다도 새로운 환경에 완만하게 적응하고 안착시키려는 아내의 의지가 컸다. 1학년 동안은 방과 후에 아내가 데리고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겠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니 그나마 내가 좀 안정되었다. 아이는 바뀐 게 없는데 입학한다고 괜히 불안했던 나의 긴박했던 하루 이틀이 끝났다. 다시 페이스를 찾고 여유 있게 아이를 기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민구네 공부방 개원
이전 07화 부어라 마셔라. 살고 싶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