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먹는 음식을 직접 기른다는 것은

감자로 맞이한 인생 첫 하지제

by 유하

농부에게는 6월이 가장 바쁘다. 농번기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말 바쁜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시간만 자고 온종일 일을 한다. 우리는 학생이기에 그렇게까지 일하지는 않는다. 그대신 한창 더운 날에는 오전 여섯 시부터 일어나서 일을한다. 한두 시간 정도 일을 하면 아침 겸 참을 먹는다. 오늘은 내가 참을 만드는 당번이다. 감자가 저온 창고에 한가득 쌓여 있다. 저번 주에 다 같이 캔 감자다. 우리는 감자를 캐자마자 바로 씻어서 참으로 쪄 먹었다. 수미 감자, 울릉도 감자, 홍감자 등 감자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지는 처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포슬포슬한 울릉도 감자가 맛있다는데 나는 미끈하고 쫀득한 수미감자가 맛있다. 흑설탕을 묻혀 아작아작 씹으면 단맛과 감자의 고소함이 묘하게 어울린다. 소금을 고집하는 이들은 고개를 갸웃하지만, 나에겐 이 방식이 제일 맛있다.

아무튼 오늘로 다시 돌아와서, 내가 만들 음식은 '차지키소스 감자 샐러드'이다. 최근에 비건 포틀럭에서 처음 먹은 두부로 만들어진 차지키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레시피를 얻었다. 입이 많으니 두부한모를 몽땅 믹서기에 넣는다. 소금, 올리고당, 마늘과 홀그레인 머스터드도 추가해 준 뒤 갈아준다. 소금을 넣고 삶아준 포슬포슬한 감자 위에 소스를 한바탕 붓는다. 감자를 조그맣게 토막 낸 뒤 차지키 소스를 올리고 후후 분 다음 먹어본다. 맛은 있지만 뭔가 부족하다. 참을 들고 가는 길에 학교 건물 뒤에 있는 텃밭에 들른다. 그곳에 불규칙하게 자라있는 풀들 사이에서 딜을 기어코 찾아낸다. 아침이라 그런지 딜은 이슬로 잔뜩 샤워를 했는지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그렇게 자연에게 씻겨진 딜을 뜯어 차지키 소스 위에 얹는다.

사람들이 좋아할까? 감자와 걱정을 한 아름 안고 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른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언덕 위 나무 식탁 위에 참을 놓는다. 학교 사람들은 내가 가지고 온 요리의 비주얼을 보며 한번 감탄하고 먹으며 거침없는 칭찬을 해준다. 사실 요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채소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공부에 온 뒤 내가 기른 채소로 요리할 생각을 하면 신이 난다. 우리가 애정들 들여, 함께 시간을 들여 키운 채소로 우리의 몸을 채울 생각에 이런저런 요리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나는 시간을 들인 무언가에 마음이 가나보다.


어느 날인가 하지였다. 태양 황경이 90도가 되어 낮이 제일 길어지는 시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날의 하지는 유독 밤이 길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난생처음으로 하지제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하지제를 주체한 '꿈뜰'에서는 우리 전공부에게 감자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저온 창고에 잔뜩 쌓여있는 감자를 나눌 기회가 생겨 기뻤다.

전공부에서 키운 감자로 샐러드, 구이, 찜을 해 먹었다. 완두콩 스프레드, 민트 소주, 떡 등 사람들이 가져온 음식으로 하지제는 더욱 풍성해진다. 모닥불도 있고, 아이들과 강아지는 뛰어논다. 하늘은 낮고 점점 남색이 된다. 진한 남색이 될수록 별은 더욱 반짝인다. 여기저기에서 모기에 물어 뜯긴다. 나는 1년 된 발리산 모기 퇴치제를 기꺼이 사람들에게 뿌려준다.

하지제를 준비한 친구가 직접 만든 노래도 같이 불렀다. ‘햇빛’이라는 노래가 참 좋더라.


햇빛 _ 짱돌

나의 꿈은 단순하지

너와 함께 햇빛을 받으며

걷는 거지 이 거리를

따사롭게 햇빛을 받으며

햇빛! 바람과 함께 춤을 추는 거지

햇빛! 너의 손 잡고 걸어가는 거지

햇빛! 너의 눈 보며 웃음 짓는 거지

눈이 부실 때면 눈 감는 거지

나의 꿈은 평화롭지

너와 함께 햇빛을 받으며

쉬는 거지 한가롭게


우리는 7시 30분 경이돼서야 노을을 보러 다 같이 우르르 홍동에서 제일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원래 해가 지는 시간은 7시 55분이었지만 그것은 바다를 기준으로 설정한 시간이었다. 홍동 주변에는 바다가 없었기 때문에 그보다 십분 전인 7시 45분에 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서 시를 읽었다.


비에도 지지 않고 _ 미야자와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서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지는 해를 보며 이런 시를 읽는다. 그것도 하지제에 초대된 마을 사람들과 다 함께. 다 함께 소리 내어 시를 읽었다. 하늘은 아직 노랗고 빨갛다. 산에 해가 가려 보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해를 등지고 다시 하지제 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 노을 밑에는 어느 할머니가 밭을 일구고 계셨다. 매일 자연과 함께 하는 방법. 내가 찾던 것들이 여기 있다.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10화최초의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