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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두콩처럼 자라고 싶다

콩에 대한 모든 것들

by 유하

콩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말랑하고 쫀득한 밥 사이에 끼여 있는 퍽퍽한 식감의 콩. ‘감옥에 간다’는 은유적 표현인 ‘콩밥을 먹는다’는 말. 그리고 사촌 동생이 자신의 콧구멍이 얼마나 동그란지 증명하겠다며 콩을 넣다가 빼지 못해 병원에 간 기억까지.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어린이들에게 콩은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콩들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콩이 있다. 바로 완두콩이다. 동글동글하고 무해한 초록색을 띠는, 귀여운 그 콩. 밥에 들어 있으면 달짝지근하고, 껍질이 톡 터지며 입안에서 기분 좋게 흩어진다. 카레에도 잘 어울리고, 그냥 삶아서 껍질 속 콩만 쏘옥 빼먹어도 맛있다. 입안에서 요리조리 굴러다니는 완두콩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가진 식재료였다. 어쩐지,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홍동에서 농사를 배우며 나는 처음으로 완두콩을 직접 키우기 시작했다. ‘그냥 심으면 자라겠지’ 했지만,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었다. 지지대를 세워주고, 줄기를 끈으로 유인해줘야 했다. 다른 식물들은 땅 가까이에서 버티듯 자라지만, 완두콩은 누군가의 손길에 기대어 위로 위로 자란다. 벽, 쇠, 나무, 옆에 있는 식물까지. 주저함 없이 덩굴손을 뻗고, 스스럼없이 기대어 자란다.

그 덩굴손은 꼭 아기 손처럼 귀엽게 구부러져 있다. 무언가를 꽉 붙잡고 있는 듯한 그 모습은, '나는 혼자 자라지 않겠다'는 완두콩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완두콩은 껍질 안에서도 동글동글 모여 자란다. 혼자보다는 함께일 때 더 사랑스럽고, 뭉쳐 있을수록 더욱 포근하다. 그 모습은, 홍동이라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의 나와 닮아 있었다.

'역시, 이렇게 귀엽게 생긴 생명체는 꼭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군.'

완두콩을 보며 문득 나 자신을 떠올렸다. 나는 스스로를 꽤 독립적인 사람이라 여겨왔지만, 사실은 완두콩처럼 조용히 누군가의 응원과 지지를 필요로 하며 자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완두콩처럼 아무렇지 않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못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두렵기도 하고, 도움만 받는 존재로 보이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완두콩 관찰 모임은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완두콩은 단지 도움이 필요하기만 한 작물이 아니었다. 그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하고 있었고, 이 덕분에 완두콩은 땅에 질소를 공급하며 주변을 더 비옥하게 만든다. 다음 작물들이 더 잘 자라게 하는 지속가능한 땅이 되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콩은 드러내지 않아도, 깊은 곳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존재. 그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완두콩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완두콩처럼 자라고 싶다. 사람들이 아무리 겉모습으로 판단해도, 땅 속에서 아무도 몰라줘도, 다음을 위해 내가 있는 자리에 필요한 것을 가득 놓아두는 존재. 조용하지만 자기 자리를 잃지 않는, 서로 기대어 더 단단해지는 그런 사람. 다른 생명체에게 '너도 나처럼 어디에나 기대도 괜찮아'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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