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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ttoo Oct 14. 2022

제주도에서 미국인 친구와 디너파티를 시작한 이유

가지가지하는 가지깐풍기와 얼큰한 고추장찌개

우리의 디너파티는 내 미국인 친구, 베스의 한마디로 시작되었다.


나, 너랑 같이 일주일에 한 번씩 비건 음식을 해 먹고 싶어!


그 말을 들은 나는 괜히 울컥했다. 

비건이 아닌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날이 오다니! (비건을 하다 보면 이런 작은 배려가 담긴 말에 쉽게 감동받는다.) 베스는 '비거니즘'이 갖고 있는 가치에 공감하고 있었고 이를 혼자서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제주도는 서울 다음으로 한국에서 비건 식당이 제일 많은 곳이기는 했지만, 외국에 비해서 비건을 실천하기 먀냥 쉬운 조건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비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즐겁게 저녁 파티를 하자고 제안해준 베스에게 정말 고마웠다. 


물론 베스가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제주도에서 기숙사에 살다가 일을 그만두면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사를 하자마자 베스를 제일 먼저 집에 초대했다. 하지만 집이 복층 원룸이었고 숲 속에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뭔가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요리를 하기로 했다.


나 : 그날 뭐해먹을래?

베스 : 음.. 나는 얼큰한 고추장찌개가 먹고 싶은데?

베스의 한국어 실력은 원어민인 나보다 더 뛰어났다. 한국에 산지 3년밖에 안되었으면서 벌써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을 정도이니..! 

베스 : 너는?

나 : 나는 깐풍기! 가지로 깐풍기를 만들면 되겠다.

초등학생 때 엄마와 손잡고 중국집에 가서 깐풍기를 매주 사 먹었던 게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겠지만, 그렇게 갑자기 떠오른 음식은 어떻게 해서든지 빠른 시일 내에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뭐 아무튼 그렇게 얼랑뚱땅 집들이 메뉴가 정해졌다. 

우리가 처음 함께 만든 비건 음식들

나는 요리 시간이 길어지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요리를 할 수 있을지 며칠 전부터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실 나만 먹을 요리라면 레시피 신경 쓰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재료 스윽 넣고, 양념 투욱 뿌리고 말 텐데(그래서 내가 요리하면 맛이 없다!) 남의 입에도 들어가는 음식이라서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그래, 한 명은 채소를 썰고, 한 명은 소스를 만들다가 가지를 튀기고....'

그렇게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렸는데도 막상 요리를 하게 되니까 우당탕탕 난리도 아니었다. 고추장찌개 소스와 가지 깐풍기 소스를 바꿔서 넣기도 하고, 해놓은 밥을 돌릴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냄비에서 중탕(?) 하기도 하고, 불이 부족해서 옆방에서 불을 빌리기도(?) 하고, 가지 튀기는 시간이 너무 늘어나서 고추장찌개가 다 졸아버리기도 했다.


"와, 우리 진짜 잘했다."

실수투성이었던 그런 과정을 거치고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아마 그 실수에 행복한 웃음이 녹아 있는 시간이 들어가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베스 : 나, 가지 튀기는 게 그렇게 재밌는지는 몰랐어. 나중에도 이런 강정 같은 거 또 해 먹자!

베스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이 말을 듣고 뜨끔했다. 사실 기름에 가지 튀기는 거 귀찮아서 베스한테 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기적인 나를 용서해주렴... 그래도 네가 튀기는 걸 즐겼다니,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네. 


그렇게 베스는 가지 튀기는 것에 재미를 느껴서 그런 건지, 나와 함께 비건 식사를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집들이가 끝날 때 즈음에 나에게 함께 디너파티를 하자고 제안해주었다. 우리는 서로 일정을 조정한 끝에 매주 수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디너파티 이름은 수(요일 저녁마다)제(주도에서)비(건음식만들기)가 되었다. 




가지가지하는 가지 깐풍기 레시피
[재료] 가지 2개, 전분가루 4 숟가락. 찹쌀가루 4 숟가락
[소스] 간장 2숟가락, 식초 2숟가락, 설탕 2숟가락, 고춧가루 1숟가락, 소금 한 꼬집, 물 3스푼
1. 소스를 만든다.
(간장 설탕 식초를 1:1:1 비율로 넣고 고춧가루로 매운맛을 조절해준다.)
2. 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3. 가지에 전분가루 묻힌다.
4. 반죽옷을 만든다.
(전분가루 4숟가락, 찹쌀가루 4숟가락, 물 반 컵을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준다)
5. 가지를 튀긴다. (두 번 튀기면 더욱 바삭하다)
6. 만든 소스를 냄비에 넣고 살짝 수분을 날리다가 튀긴 가지를 넣고 재빠르게 버무린다.
얼큰한 고추장찌개 레시피
[재료] 감자, 양파, 버섯, 파, 애호박, 두부
[양념] 고추장 2숟가락, 고춧가루 1숟가락, 국간장 1숟가락, 다진 마늘 반 숟가락, 비정제 설탕 반 숟가락

 1. 재료를 씻고, 깍둑썰기로 잘라준다.
2. 냄비에 감자, 물 2컵, 양념장을 넣고 끓인다.
3. 감자가 반 정도 익었을 때 양파, 버섯, 두부를 넣는다.
4. 파를 넣고 약한 불에 1~2분 더 끓인다.


*원래는 이 레시피였지만 양념을 바꿔서 했다*

출처 - 베지곰(이지만 레시피를 입맛대로 조금 변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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