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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파일럿 Jul 15. 2020

관제사님 저 어디로 가라고요...?

비행을 할 경우 우리가 가장 많은 조언을 얻는 사람이 누굴까? 당연히 관제사이다. 물론 요즘 항공기에는 최신형 항법 장치들이 달려있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자체적으로 자신의 위치 속도 고도를 파악하여 목적지까지 비행을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관제사의 조언은 분명 안전한 비행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관제사들은 방향 및 고도만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고, 그 주변의 교통 상황을 조종사들에게 실시간으로 조언을 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항공기의 항적에 대해 유의하며 안전 비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즉 안전비행에 있어서 물론 다른 직종 사람들의 도움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조종사와 관제사의 팀플레이는 항상 중요하다.


오늘의 이야기는 크로스컨트리 솔로비행을 할 때의 이야기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조종훈련생들은 훈련과정 중에 단독 비행을 실시해야 한다. 물을 뿌리고 축하를 해주는 Initial solo비행을 포함하여 여러 차례의 단독 비행을 수행하게 되는데 오늘 얘기해보고자 하는 단독 비행은, 어느 공항에서 다른 공항까지 홀로 다녀오는 크로스컨트리 솔로비행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의 학교에선 양양 국제공항, 여수공항, 울산공항 등등 여러 공항으로 크로스컨트리를 다녔었는데 필자의 단독 비행에선 울산으로 다녀왔기에 그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한 여름의 울산공항 36번 활주로는 정말 내리기 힘들었던 공항중에 하나였다.>

사진과는 다르게 사실 필자는 크로스컨트리 솔로비행을 겨울에 다녀왔었다. 사실 겨울은 정말 비행하기 힘든 계절인데, 바람도 많이 불고 난기류도 심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계절이다. 실제로 솔로비행을 가기 위해 교관님과 연습하던 도중, 터뷸런스가 너무 심해서 다시 회항을 한 경우도 있을 정도로 겨울은 비행하기 힘들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필자가 솔로비행을 가던 날은, 온도만 조금 낮지, 가을과 같은 날씨였다. 솔로비행을 하기 전에 담당 교관님과 공항 주변의 장주 비행을 실시하게 된다. 장주란 공항 주변의 정해진 고도 및 루트에서 시각적으로 접근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상의 공간이다. 흔히 영어로는 Traffic Pattern이라 그러는데 비행을 해보신 분들은 아마 패턴이라는 말에 더 익숙할 것이다. 어찌 됐든 장주 비행을 실시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랜딩 연습을 하기 위함이다. 필자의 담당 교관님은 해당 목적지 공항에서 Touch and go (항공기가 활주로에 닿았다가 다시 추력을 넣어 재 이륙하는 것)을 하지 말고 그냥 해당 공항 상공을 비행하고 오라 하셨지만, 혹시나 비상 상황이 생긴다면 해당 공항에 착륙해야 할 수도 있기에 랜딩 연습을 몇 번 해보고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착륙 연습을 하고 교관님이 만족할만한 정도의 퍼포먼스가 나온다면, 램프에 잠시 들어와서 교관님을 내려드리고 드디어 혼자서 해당 공항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필자의 베이스 공항에서 울산공항까지는 사실 GPS 포인트들이 정해져 있었다. 원래 Visual Flight Rules에서 크로스컨트리 비행 시에는 지형지물을 참조하여 비행하는 Pilotage(지문 항법)을 사용하여야 하지만, 울산공항까지 가는 길이 대부분 해변가였기 때문에 보조 시스템으로 포인트를 지정하여 그 포인트를 따라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 이제 관제탑에서 이륙 허가를 받고 힘차게 이륙을 하였다. 당시에 고도 5500ft로 비행하도록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고도와 속도를 지켜가며 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 날은 정말 천운이 따른 것인지 바람도 잔잔하고 난기류도 거의 없는 아주 비행하기 좋은 날이었다. 비행을 하며 분위기 있는 겨울 동해바다를 보고 있는 것은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있는 것도 희미하게나마 보이고, 앙상하긴 하지만 군데군데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우리나라의 강산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동안 비행을 하며 쌓였던 피로가 전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날아갔을까. 나는 울산 접근 관제소의 관제권 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교관님께서 시키신 대로 공항에 내리지 않고 상공을 날아서 다시 돌아가겠다고 연락을 했다. 일반적으로 시계 접근에는 각 공항에 정해진 포인트들이 있다. 그 포인트들을 정해진 고도로 통과하여 공항에 접근해야 안전하게 접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울산광역시 동쪽에 있는 산을 지나 서서히 내려가다가 관제사분이 시키는 대로 공항을 통과하자마자 다음 포인트로 서서히 고도를 올리며 울산광역시를 통과하여 갔다. 당시에 울산이란 도시를 처음 봤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광역시답게 정말 웅장한 모습에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울산공항의 시계 접근 차트, 공항을 지나 N포인트로 출항을 했다>

자 이제 안전하게 울산공항을 지나왔으니 다시 베이스 공항까지 안전하게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울산공항을 올 때와 다르게 울산에서 돌아갈 때는 내륙지역을 통과해서 가게 된다. 이 경우 경주시를 비롯한 경상북도의 많은 시들을 지나가게 되는데, 필자는 사실 경상북도에는 연고가 없었기에 신나게 한눈팔면서 바깥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 물론 고도와 속도 방향은 정확하게 지키면서 말이다! 위에 언급한 지문 항법에서는 바깥의 지상 참조 물을 보며 비행을 해야 하기에 지문 항법을 연습했다고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자 그래서 이제 베이스 공항 근처에 도착을 했다. 포항 관제소를 지나 해당 관제소에 연락을 하고 정해진 포인트들을 따라 공항으로 입항을 하고 있었다. 이전 글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필자가 졸업한 학교에서는 바닷가로 들어오는 남쪽 공역이 있다. 따라서 울산과 같이 남쪽에서 입항하는 항공기들은 해당 공역을 통해 들어오게 되는데, 처음에 S포인트를 통과하고, 그다음 B포인트를 통과한 뒤 정해진 절차에 따라 활주로에 내리게 되어있다. 따라서 당연히 교관님과 연습했던 대로 S포인트를 통과하고 그다음 포인트의 고도와 입항절차에 대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갑자기 관제탑에서 연락이 왔다. “ㅇㅇㅇㅇ solo(솔로비행하는 항공기에는 콜사인 다음에 Solo라는 콜사인을 추가로 붙여 해당 조종훈련생이 단독 비행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Make circle until further notice.”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해당 포인트에서 한 바퀴를 돌라는 지시인데 이러한 지시는 보통 내가 가고자 하는 항로 혹은 접근 경로에 다른 항공기들이 있어 간격 분리를 위해 실시하게 된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교관님과 비행하면서 종종 해봤던 기동이고,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관제사분께서 지시하는 대로 실시하고 관제사분께 한 바퀴를 다 돌았다고 얘기를 했더니, 다행히 그다음 포인트로 보내주신다. 휴 사실 솔로비행시에는 이런 별거 아닌 것도 진땀이 나고 긴장을 하게 된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금까지 연습했던 대로 다음 포인트로 고도를 낮추면서 비행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관제사님이 또 급하게 나를 부르신다. “이번엔 또 왜 부르는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대답을 했더니 다음 포인트에서도 계속 원을 그리라는 것이다. “어휴 이거 야단 났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쩌겠는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래서 해당 관제를 듣고 한 10분 정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슬슬 멀미가 나기 시작할 때쯤 관제사님께서 또 연락을 주신다. “혹시 알파 포인트로 찾아갈 수 있어요?”라는 관제였다. 알파 포인트는 입항 차트에 나와있는 포인트 중 하나인데, 북쪽 공역을 사용하는 학교에서 주로 입항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사실 익숙하지가 않았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달려있긴 하지만, 당시엔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당연히 멘탈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흔들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어딘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하면 분명 관제탑에 올라가 있는 담당 교관님도 관제사분들께 한 소리 들을 것 같기에 어떻게든 찾아가 보겠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한 행위였던 것인데, 방향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작정 찾아간다고 한 것은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아주 큰 위험요소를 갖고 있다. 다행히 내가 확신이 없어 보인다 생각하셨는지 관제사님께선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주시며 이 방향으로 비행을 하라고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알파 포인트로 비행하고 있는 도중에 관제사님께서 나를 다시 불러 원래 연습했던 절차대로 되돌려주셨다. Traffic Pattern의 downwind로 진입해서 패턴을 그리며 활주로에 착륙하라는 지시였다! 그 지시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그때부터 “어휴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연습한 대로 다시 비행하여 최종 접근구간까지 도착했다. 그러자 관제사님께서 Cleared to land라는 지시를 해주셨는데 그 지시가 얼마나 반갑던지. 정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 속담이 떠올랐다. 하지만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인지 솔로비행을 떠나기 전 연습했던 대로 랜딩이 잘 되지 않아 Go around를 수행했다. 아마 일전에 긴장했던 것들이 몸에 남아 너무 과도하게 긴장한 상태에서 랜딩을 했던 탓인 것 같다. 다행히 복행을 한 이후에 다시 장주 비행을 수행하여 안전하게 활주로에 내릴 수 있었다. 교관님께는 “야 너 알파로 가라니까 왜 그렇게 당황을 해, 랜딩은 잘하던 놈이 왜 또 복행을 한겨~”라는 애교 섞인 잔소리를 들었지만 말이다.


<관제사분들이 보는 레이더 화면이라 한다.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저걸 보고 관제를 하는 관제사분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오늘은 이렇게 첫 크로스컨트리 비행 때 당황했던 나의 기억 한 조각을 꺼내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한 패기로 도전했던 것이지만,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방향을 파악했던 걸 떠올려보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살면서 언제나 무엇인가에 대한 용기는 필요하지만 자만과 과욕은 언제나 독이 되는 것 같다. 분명 당시에 관제사님도 주변 교통 상황이 혼잡하니까 날 도와주려고 그러한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한 마음과 함께 존경을 담아 보낸다. 물론 그 당시엔 왜 나한테 이런 걸 시키냐는 생각에 짜증도 나고 긴장했지만 결국 그분들 덕분에 안전하게 내릴 수 있었으니까.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떤 확실한 목적지가 있으면 분명 이곳에 다다르기 위해 도와주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는 내 주위를 돌아보면서, 내가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옆에서 신경 써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하루가 되면 어떨까. 결국 목적지라는 곳은 조금 돌아가도 다다르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최근 항공업계가 많이 힘들다는 뉴스를 자주 보고 한다. 같은 항공업계 종사자로서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순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가 있기에 조금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될 것 같다. 혹시 또 모르겠다 옆을 돌아가면서 또 다른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지!

자 그럼 오늘 하루도 다들 고생 많으셨고, 내일 하루도 목적지를 위해 힘차게 한 발 딛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면서 Have a safe f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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