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미테지구, 그리고 노을
베를린_5
벌써 베를린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수많은 골목과 거리, 잊을 수 없는 맛과 풍경들.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떠난다니, 마음 한편이 허전하고 아쉬웠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숙소를 나서며 다섯 밤이나 정들었던 공간을 마지막으로 사진에 담았다.
함께 지냈던 호스트는 잠을 떨치면서 까지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작별의 순간은 늘 아쉬웠다.
떠나기 전 베를린의 동쪽을 둘러보기로 하고 역으로 향했다.
역에 짐을 맡기고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먹었다. 독일 맥도널드에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햄버거 맛은 한국이 오히려 더 나은 것 같았다. 한국은 다양한 종류의 햄버거가 많은데 독일은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유명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도착해 장벽 옆의 길을 걸었다. 생각보다 장벽이 엄청 길어서 깜짝 놀랐다. 당연히 관광객 인파가 많았다.
사진으로 보던 유명한 벽화들이 많이 보였다. '
형제의 키스'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부끄럽지만 형제의 키스(Bruderkuss) 그림이 풍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독일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형제의 키스는 1979년 소련의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호네커가 입을 맞추는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진 벽화이다. 사회주의 국가 간에는 결속을 상징하는 행위로 키스를 하곤 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 출신 예술가 드미트리 브루벨이 그렸다. 키스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 벽화는 냉전 시대 동구권의 권력 구조와 이념적 모순을 풍자한다. 동시에 자유와 통합에 대한 열망을 담은 전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그라피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세계의 눈'이라는 작품에 눈길이 갔다. 독일을 둘로 갈랐던 장벽이 붕괴되던 날, 자유를 향해 서쪽으로 몰려오던 수많은 동독 시민들의 얼굴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얼굴은 억눌린 감정과 희망, 불안, 해방의 열망을 담고 있었다. 각각의 표정이 다르게 그려져 있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걷다가 쇠사슬에 묶인 엄지손가락 그림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억압된 자유를 감춘 체제의 위선을 말하고 있는 그림이었지만 동시에, ‘좋아요’라는 익숙한 제스처에 담긴 현대의 아이러니가 떠올랐다. 자유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이 시대에서도 감춰진 굴레가 여전히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이었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둘러본 후 우린 하케셔 마르크트 역으로 향했다. 최근에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곳, 미테지구 내에 있는 하케셔 회페(Hackesche Höfe)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역에 내리자 각종 수공예품과 빈티지 물건, 싱싱한 과일과 길거리 음식들을 파는 노점이 많이 보였다.
하케셔 회페(Hackesche Höfe)
베를린 미테 지구에 위치한 아르누보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 복합체이다. 1906년에 지어진 이곳은 8개의 안뜰(Hof)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마당은 독특한 분위기와 용도를 지니고 있다. 카페, 부티크 상점, 갤러리, 영화관 등이 입점해 있어 예술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독특한 타일 장식과 정돈된 건축미 덕분에 매우 아름다우며, 베를린에서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베를린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일부 피해를 입었지만, 전체 구조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전후 동베를린에 속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방치되고 낙후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독일 통일 이후인 1990년대 초, 대대적인 복원 사업이 이루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 완전히 재탄생하여 오늘날과 같은 예술 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미로처럼 통로들을 통과하면 새로운 공간이 나오는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양식의 하케셔 회폐 안에는 베를린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140년 전통의 초콜릿 가게 자바데(Sawade)가 있었다. 초콜릿 가격이 후덜덜 해서 우리는 신중하게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채웠다. 그 초콜릿들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우리는 여행 내내 이 초콜릿을 두고두고 아껴가며 하나씩 꺼내 먹었다.
미떼지구는 요즘 가장 핫한 거리라는 명성에 걸맞게 구석구석 재미있는 장소들이 많이 있었다.
미테 지구를 다 둘러보고, 마침내 베를린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다시 하케셔 역으로 발걸음을 돌리는데 산타할아버지 옷이 전혀 위화감이 없는 몸집이 커다란 할아버지 한분이 우리를 불렀다.
"거기 예쁜 숙녀분들, 이리로 와 봐요."
여느 호객행위와 달리 아주 적극적이고, 정중한 태도로 부르기에 우리는 할아버지 쪽으로 걸어갔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아. 한국분들? 역시 그래서 아름답군요."
할아버지는 우리와 몇 마디를 나누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가게 안 웨이터에게 토스했다. 얼떨결에 가게에 들어온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당황해서 웃었지만 마침 출출하기도 하고 쉬어 갈 타이밍이기도 했다. 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만 보니 우리 뒤에도 그렇게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들어오는 손님 모두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는 걸로 봐서 할아버지는 호객의 달인임에 틀림없었다.
가장 만만한 메뉴인 피자와 커피,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시켰다.
걷느라 지친 다리가 묵직했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가득해서 종일 앉지도 못하고 걸었던 날이었다. 좀 무겁긴 해도 이젠 곧잘 한나절은 버티는 다리가 대견했다.
음식이 나오자 아이는 커피 잔을 먼저 들었다.
"오. 이 집 커피 맛있다."
이제 열다섯 인 아이는 이번 여행에서 커피맛을 제대로 배우고 있었다.
나는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아이를 보니 나란히 앉아 술잔을 기울일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이 와도, 도무지 살을 붙이지 않고는 잠을 자지 않던 엄마 껌딱지의 오동통한 볼은 여전히 저 얼굴에 겹쳐 보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청승맞게 잠시 눈가가 뜨거워졌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오니 기찻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노을이다. 너무 이쁘다."
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늘 노을 진 하늘을 너무 사랑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겨울 독일은 흐린 하늘이 대부분이라 노을을 보는 게 처음이었다. 베를린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또 오고 싶은 도시로 남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에 부응하듯 나는 꼭 한번 이 도시에 길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차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 누가 그렸는지 모를 귀여운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I ♡ u like mouse ♡ cheese.
쥐가 치즈를 좋아하는 만큼 너를 좋아한다니.
한국 쥐는 아마도 공감하지 못할 내용이겠지만, 너무 귀여운 말이었다. 한참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남편이 생각나 사진을 찍어 보냈다.
네시가 조금 넘은 시각, 홍시빛깔로 물들었던 베를린의 하늘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린 충만했던 베를린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